장편소설

죽으려던 내가 소녀를 만나(11)

두꺼비네 맹꽁이 2021. 2. 5. 13:21

목숨과의 결탁

 

바람, 갯고랑을 따라 구불구불 한없이 밀려 올라가는 밀물에 밀린 바람이 사뭇 신경질적으로 뺨을 때리며 지나갔다. 칼날 같았다. 얼음 바늘이 얼굴에 와서 콕콕 박히는 것 같았다.

얼음의 날카로운 단면에 살을 베이고 피를 흘릴 때의 느낌이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픈 것인지 시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어쩐지 황홀해서 자꾸만 그 느낌을 부둥켜안고 싶고, 알 수도 없는 그 어떤 것 속으로 깊이 빠져버리고 싶어지는 그런 것, 그것이 가령 외로움 때문이라면, 외로움이란 필경 초신성(超新星)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희미한 것이 점차 밝아지다가 어느 한순간 무섭게 타오르면서 나 자신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들이 환하게 비쳐지는 듯한,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느낌, 외로움이란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아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쩌면 차라리 번개의 일종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동원하여, 자신을 찬란하게 불태우며 그때까지 몰랐던 자기 자신의 근원을 순간적으로 한 번 똑바로 응시하는 것, 그리고는 만족해서 소멸해 버리는 것, 그러나 이때의 소멸은 타자의 입장에서일 뿐이고, 나 자신의 근본을 이미 알아버린 나는 결코 소멸되는 법이 없이 어딘가에 남아서 우주의 한 축을 형성하며 떠돌아다닐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가끔 자신의 뺨이나 이마를 만져보며 짧고 투명한 언어로 존재의 질서를 정리해보곤 할 것이다. 이를테면 이렇게, , 나는 아직 여기에 그대로 있었군, 하고, 그렇게 말이다.

 

그랬다. 나는 아직 거기에 그렇게 서 있었다. 이월, 갯고랑을 따라 구불구불 갯물이 올라가고 있는 갯가의 갈대들 옆에 서 있었다. 공동묘지는 아니지만 공동묘지처럼 이십여 기의 무덤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엎드린 채로 까맣게 타버린 바로 그곳이었다.

아마도 작년 추석에 후손들이 조상 무덤의 벌초를 안 했었던 모양이다. 벌초를 했었다면 군데군데 서 있는 소나무의 삭정이까지 불에 타버렸을 리가 없었다. 아래는 산 채로 숯처럼 검게 타버렸으면서도 윗쪽은 파랗게 살아서 소나무 행색으로 서 있는 소나무 위에서 까치가 울었다. 까치 소리를 의식하고 있는 내가 나는 다소 짜증스러웠다.

 

개는 불에 탄 무덤에까지 따라와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녀석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녀석이다. 아니다. 개를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것이겠지. 나는 그때까지 어깨에 메고 있었던 삽을 아무 데나 푹 찔러 넣고, 삽자루 옆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기로 했다.

얼어붙은 공기 속으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바다는 붉게 물들었다. 살얼음이 쨍쨍 깨지듯이 바다가 위태로워 보였다. 죽도와 송도 사이 뱃길을 따라 들어오던 고깃배들은 일제히 불이 붙어 정지 상태에 있었다. 노을은 그렇게 모든 것을, 심지어는 바닷물까지도 태워버리고 있었다.

 

개는 처음보다 좀 더 대법하게, 노골적으로 내 삶의 문제에 개입하기로 작심을 한 모양이다. 내가 다리를 구부리고 엉거주춤한 자세나마 자리를 잡자마자 녀석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뒷다리를 접고 앉아 말끔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이제 개의 눈을 피하지 않고, 피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녀석 참 이상한 녀석일세, 약간의 의구심만을 지닌 채 개의 눈을 보았다.

그렇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삽살이처럼 생겼지만 삽살이는 아닌, 진돗개도 아닌, 두루뭉실 그냥 똥개라고 하기에는 어쩐지 영민하고 기품마저 느껴지는, 두 귀를 쫑긋이 세우고 혀를 빼문 채로 뭐라고 말을 하는 듯한 개의 눈을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결국은 핑계에 지나지 않겠지만, 아직은 뭔가 알 수 없는 미련이 남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만,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달리 아무것도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개의 눈 속에 내가 있고, 그 눈에 또한 불 탄 무덤들이 비쳐지고 있었다. 후일에 누군가가 만일, 또는 내가 내 자신에게, 그때 왜 구덩이를 파고 스스로를 묻어버리지 않고 살아남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개의 감시 때문에 죽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게 되리라.

 

미친놈, 치사하고 비굴하고 뻔뻔한…….”

 

소나무와 잣나무가 빽빽한, 은선암으로 통하는 비탈길을 오르면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내 소리에 내가 놀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어둠 속에서 개의 눈이 별빛에 반사되어 나를 찔렀다.

그때의 섬뜩함과, 섬뜩한 느낌 뒤의 말할 수 없는 편안함에 취한 채로 나는 이리와 쭈쭈, 하고 무슨 뜻인지 나도 알 수 없는 소리로 개를 불렀다. 그러자 녀석은, 촌각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내가 불러주기만을 기다렸다는 투로 한달음에 달려와서 품에 안기더니 뺨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아 이것이었나, 이것이었나.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결국 이것이었나.

 

어쨌든 그날의 내게는 무엇이든 핑계가 있어야만 했다. 무엇이 되었건, 살아남기 위해서건 더 큰 의미 있는 죽음의 시간을 위해서건, 핑계가 있어야만 했다. 그날 그 시간에 만일 개가 내 뒤를 따라오지만 않았다면, 개가 자꾸 내 눈에 밟히지만 않았더라도, 등골이 서늘하게 불어오는 해풍에 어쩌지 못하고 폐에 구멍이 뚫린 채로 갯고랑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는 물 속으로라도 뛰어들었을 텐데 아쉽구나 하는, 최소한의 그런 핑계라도 있어야만 했다. 그런 핑계라도 없이는 차마 은선암의 너른 뜨락으로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슴에 식칼을 품고 길을 나설 때는 없었던, 단청에서 풍기는 냄새가 아직도 선연한 것이 잘해야 일이 년이나 되었을까, 새로 건축된 일주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아 여기도 이렇게 변했구나, 어쩌고 한동안 감상에 젖어 있다가 막 발을 떼어놓으려는 참인데 안쪽에서 징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염불소리. 음색이 서로 다른 비구와 비구니의 목소리가 주는 듯이 받는 듯이 숨 가쁘게 달려가는 속에서 징 소리가 자지러들고 있었다.

 

아마도 길을 못 찾고 헤매는 누군가의 영혼을 천도하는 제라도 올리는 중인가 보았다. 물방울처럼 낭랑한 비구니의 목소리와 굵고 부드러운 비구의 저음이 동시에 허공으로 나는 듯 땅으로 스며드는 듯 어둠을 안내하는 촛불처럼 때로는 악귀를 물리치는 만수향처럼 바람이 우우 울어대는 빽빽한 밤의 숲을 향에 속속 뻗어나가고 있었다.

어마.”

촛불이 검은 연매(煉煤)을 뿜어내며 펄럭펄럭 맹렬하게 타오르는 석등 앞을 지나치고 있을 때였다. 사발로 하나 가득 붉은 팥을 담아 들고 막 공양간은 빠져 나오던 여자아이 하나가 신음 소리와 함께 우뚝 멈춰 섰다.

 

잿빛의 헐렁한 승복 바지에 꽉 조이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그 위에 빨간 점퍼를 걸친 채로 불빛을 등에 지고 서 있는 그녀의 놀란 모습은 뭐랄까, 그로테스크하다고나 할까, 아무튼지 썩 배합이 잘 된 그림은 아니었다. 나는 개를 품에 안은 채로 얼결에 합장을 했고, 그녀 역시 사발을 손에 든 채 합장의 자세를 취해 보이고는 법당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열두 살은 넘었고, 열일곱은 아직 안 되어 보였다. 공양간에는 그만한 또래의 여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녀는 꽉 조이는 청바지를 입고 상의는 누비한 승복을 헐렁하게 걸치고 있었다. 이제 갓 코흘리개나 면했을까, 자기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또 하나의 여자아이를 품에 안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며 달래고 있는 중이었다.

 

어린 여자아이는 징징 우는 소리를 내며 딸꾹질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 아마도 오래 전부터 슬픔에 잠겨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문 앞에 선 채로 잠시 머뭇거렸다. 모르는 체하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릴까 법당으로 먼저 가볼까 얼른 판단이 안 서는 까닭이었다.

그때까지 얌전히 잠자코 있던 품속의 개가 꿈틀거리며 낑낑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울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렸다 싶은 순간 쭈쭈야 쭈쭈,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서더니 한달음에 달려왔다. 여자아이의 강렬한, 감동에 찬 부르짖음과 내 품속의 개가 날렵하게 뛰어내린 것은 아마 거의 동시였을 것이다.

이 녀석의 이름이 쭈쭈란 말인가? 흐흠, 개를 잃어버리고 슬퍼서 울었던 모양이로군, 저 아이는, 저 아이, 개를 얼싸안고 뒹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나이는 여섯이나 일곱 살쯤 되어 보였다. 그렇다면 그때의 그 아이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 아이,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떠나버린 누이의 딸, 너 이름이 뭐지?

 

난이에요. 난이.”

몇 살이야?”

일곱 살.”

 

아이는 개를 품에 안은 채로 두 손을 펴들고 손가락 일곱 개를 차례로 꼽아 보였다. 일곱, 육 년만 더 있으면 이 아이도, 그러니까 난이도 복숭아의 과육 냄새를 풍기게 될 것이다. 저를 낳은 어미가 그랬듯이, 물이 물을 따라 흐르듯이 이 아이도 자기가 언제 어디로 흐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쏜살같이 흐르고, 흐르는 동안에 아이를 낳을 준비도 척척 갖춰져 있게 될 것이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베개가 있는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기는 아직도 어머니의 잠자리일 게 분명했다. 부엌을 땔나무에서 연탄으로 바꾸고 연탄을 다시 가스로 개조하면서 쓸모가 없어진 땔나무 저장 창고를 어머니는 방으로 꾸미고 북쪽의 한 귀퉁이를 당신의 처소로 삼았다.

세월의 때에 절은 반다지 한 개와 이부자리 두 개, 베개 하나, 달력 한 장이 어머니의 개인 소지품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거의 없어 보였다. 공간이 너무 넓어서 황량했고, 게다가 겨울에는 외풍이 심한 탓으로 저녁에 끓여놓은 옥수수차가 아침이면 얼어붙어 있는 등 잠자리로는 적절치가 않았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생각을 꺾지 않았다.

 

죄가 많아서, 죄가 많아서…….”

 

신도들 가운데 누군가가 가령 텔레비전이라든가 전기난로 같은 것을 들고 올라치면 어머니는 언제나 죄가 많다는 말로 그 물건을 사양했다. 그러면 신도는 물건을 팔아서 돈으로 다시 가져왔다. 돈은 이런저런 여러 가지 불사(佛事)를 위해 고리짝 속에 쌓여갔다. 그 가운데 일부는 누이가 자신의 생각을 찾는다는 이유로 길을 떠나면서 가져갔고, 또 일부는 내가 누이의 손에서 빼앗은 식칼을 품에 안고 새벽길을 나설 때 빼냈다.

어머니는 그때 깊이 잠들어 있었다. 누이는 고리짝을 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때 어머니가 잠자리에서 일심으로 부처를 만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정성에 정성을 다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그 마음으로 부처를 만나고 있는 동안에는 도둑이 들어와도 모를 수밖에 없다고, 심지어는 호랑이가 들어와서 떠메어 가도 알 수가 없고 또 그래야만이 온당하다고, 고리짝 속의 돈을 훔치면서 나는 그때 생각했었다.

 

발우 왔냐. 누군가 했더니 너로구나.”

어머니는 마치 어제 어디로 심부름을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을 대하듯이 말했다. 칠 년 전의 어머니 그대로였다. 전에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편안했지만 이제는 부담스러웠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서서, 역시 엉거주춤한 자세의 자신이 없는 태도로 꾸벅 고개를 숙여 말하자면 어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누가 왔다고 해서, 누군가 하고 나왔는데 너로구나.”

 

어머니는 말을 하면서도 나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나 역시 어머니를 정면에서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내 뒤의 무엇인가에 시선을 주고 있었고, 나는 어머니의 뒤쪽으로 눈길을 피하다가 낯익은 시선과 마주쳤다.

아까 사발에 팥을 담아 들고 법당으로 간 여자가 어머니의 뒤에 인형처럼 서서 이쪽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흠칫 어깨를 떨며 뒤로 물러섰다. 청바지의 여자는 싱크대 앞으로 물러서서 눈만 꿈벅꿈벅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아까부터 계속 거기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았다.

 

너희들 이리로 와서 앉아라. 인사해. 오빠다.”

어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여자아이들을 불렀다. 그러나 그녀들은 다가오지 않았다. 싱크대 앞에 나란히 선 채로 엉덩이를 뒤로 빼며 고개만 한 번 꾸뻑 해 보였다. 그리고는 서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뭐라고 소곤거렸다.

지랄한다. 저년들이 지금 내외를 하자는 모양이다. 저쪽에 쟤는 채연이고 이쪽에 얘는 송화다. 둘 다 열넷이야.”

 

채연이 송화, 채연이 송화. 나는 청바지와 빨간 점퍼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름을 외웠다. 청바지가 채연이고 빨간 점퍼가 송화라는가 보았다.

혜수 나가고 너 나가고, 두 달인가 석 달인가 뒤에 거둬온 거다. 채연이는 터미널에서 만났고 송화는 은사골 지서주임이 거둬서 고아원에 데려가는 걸 내가 데려온 거야. 이름은 옥심이다 딸그만이다 있기는 했지만 고약해서 내가 바꿔버렸다.”

이름을 어머니가 임의를 바꿨다는 대목에서 나는 문득 내 이름을 생각했다. 발우, 그것은 나를 낳아준 사람이 지은 이름은 아니었다. 어머니 자신이 그렇게 지었다고 법운 스님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어머니 역시 말은 내게 하면서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여자애들만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떨고 있었다. 목소리가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그나저나 혜수, 혜수가 누굴까, 생각해 보니 그것은 누이의 이름이었다. 아 참 누이에게도 이름이 있었지, 하고 나는 갑자기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져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이의 얼굴은 언제라도 손을 내밀면 금방 잡힐 듯이 환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그 이름은 희미하고 낯설었다. 그동안 혜수라는 이름을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이름이 아니라 얼굴로, 저녁에 목욕을 하던 날의 그 희미한 젖가슴으로, 몸으로만 내게 존재하고 있었던가 보았다.

 

할머니, 할머니, 나도 오빠 해?”

개를 품에 안고 어르면서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혜수의 딸 난이가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며 앞으로 나섰다.

지랄한다. 너는 이년아 삼촌이라고 해야 해. 외삼촌, 그렇게 불러봐.”

치이, 외삼촌 안 해, 안 할 거야. 오빠 할 거야.”

빌어먹을 년, 이년도 일찌감치 꽃무늬 빤스나 한 아름 안겨줘야겠어. 나는 이만 법당에 가봐야겠다. 너도 웬만하면 와서 스님께 인사도 여쭙고 그래라. 법운스님 와 계신다.

 

법운은 은선암에 불사가 있을 때면 어머니가 으레 모셔오는 비구였다. 경내에 따로 막을 지어놓고 진돗개다 세퍼트다 온갖 종류의 개들을 쉰 마리도 넘게 기르는 그 방면의 전문가이기도 했다. 살아온 길이 하도 가파르고 구불구불해서 공부가 높다는 게 법운을 신뢰하는 어머니의 이유였지만 공부의 높낮음은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