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죽으려던 내가 소녀를 만나(10)

두꺼비네 맹꽁이 2021. 2. 4. 11:55

누이에 관하여

 

누이는 그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경스럽게도 문수보살을 둘둘 말아 던져 버리고 아미타불 옆에 웅크리고 앉아 욕정을 꿀꺽꿀꺽 삼켜가며 유령인지 선녀인지 이태백인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헛것에 넋을 빼앗긴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내의 존재를 누이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처음부터 누이의 계산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느 순간 새처럼 때글때글한 소리로 웃어대다가는, 그러다가는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갑작스런 웃는 소리에 아아 들켜 버렸나보다, 숨이 덜컥 막혀 주저앉았다가 한참 만에 다시 보니 선녀도 이태백이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아아 정말로 유령이었나봐 요괴였나봐, 나는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헐떡거리며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누이의 행동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이는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답도 주지 않았다. 그 뒤로도 달이 밝은 밤에 찰박찰박 물소리는 가끔 들려왔지만 달빛에 잠긴 누이의 벗은 몸을 볼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목욕을 해도 다시는 물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법이 없이 물 속에 들어앉아 손바닥으로 찰박찰박 그날의 현기증을 상기시키며 나를 녹이고만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서서히 녹아가고 있었다. 한낮에 누이를 대하면 덮어놓고 고개부터 수그려졌다. 햇볕에 노출된 우뭇가사리 같았다. 내가. 반면에 누이는 나날이 싱싱해져 갔다. 달이 없는 저녁에도 무서움을 타는 법이 없이 새처럼 바깥 나들이를 했고, 겨울에도 여름처럼 거침없이 찬물을 온 몸에 끼얹고는 했다.

 

누이가 그렇게 팔팔하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움츠러들고, 움츠러들면서도 마음만은 전에 없이 펄펄하게 살아서 뭔가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면서, 행동이 미치지 못하는 그놈의 욕망 때문에 매일매일 허둥거려야만 했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면 손은 언제나 사타구니에 가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던 거지? 하고 살펴보면 아랫도리가 흥건이 젖어 있었다. 아 이놈의 손, , 가끔은 그놈의 손을 들여다보며 잘라 버려야지, 잘라 버려야 해, 맹세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손이 없다면, 손이 없다면 그 뒤에 어떻게 하나, 두려워서 차마 칼을 들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어머니와 누님이 동시에 출타중일 때였다. 비구니스님이 따로 한 분 계셨지만 그분은 노쇠한데다가 귀까지 멀어서 빽빽한 밀림의 산사에 사람은 오직 누이와 나 단 둘이밖에 없는 거나 매한가지였다.

주먹으로 꽝 내려치면 무너질 것도 같은 바람벽을 사이에 두고, 어쩌면 내 욕망의 비루함을 꿰뚫어보고 키들키들 웃어대며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누이를 생각하며 얼굴을 붉혀야만 하는 밤, 불면의 밤을 건너고 있노라면 아, 지옥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다.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누이의 방문을 와락 열어젖히고 뛰어 들어가는 상상으로 머리를 쥐어뜯은 것은 또 몇 번이었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토록 강렬하게 열망하면서도 다가서지 못한, 아니 달려가지 못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무엇이었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도 생각과 행동을 다르게 하도록 강요했던 거지?

내가 돌출된 성기를 가진 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일종의 치욕감을 갖고 이놈의 몸뚱이를 살해해 버려야지, 살해해 버려야 해, 가끔씩 그런 강렬한 충동으로 죽음의 구체적인 방법을 숙고해보기 시작한 것은 아마 그 무렵의 어느 때부터였을 것이다.

 

만약에 때에 맞춰 다른 한 여자가 정혼녀의 자격으로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누이는 어쩌면 그런 식으로 나를 녹이고 말려서 끝내는 폐인이 되게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를 일. 아무튼지 그랬다. 그 무렵에 누이는 나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이의 그런 보이지 않는 압력은 내게 정혼녀가 생기면서 더한층 강화되었다.

나는 누이의 암묵적인 동의가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임의로 해낼 수가 없었다. 정혼녀의 얼굴을 한 번 보는 데도 누이의 눈치를 살펴야 했고, 심지어는 밥상 앞에서조차 누이의 기분을 헤아려본 뒤에야 같이 어울려 밥을 먹든가 밥맛이 없다는 핑계로 자리를 떠나든가 결정을 해야만 할 정도로 나는 겁 많은 강아지처럼 길들여져 있었다.

 

게다가 누이는 내가 나의 정혼녀와 단 둘이만 있을 수 있는 환경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머잖아 부부로 묶여지게 되어 있는 여자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목 한 번 잡아보기는커녕 얼굴조차 마음 놓고 정감 있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몸이 온통 지혜와 재치로만 이루어진 누이는 그렇게 눈짓 하나 손짓 하나, 말투 하나하나로 간단하게 나를 원격 조정하는 한편 정혼녀에게는 누이 자신과 둘도 없는 동지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잠시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고 보면 누이는 어쩌면 오래 전부터 나를 자신의 남편감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누이를 내 아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누이는 결국 나의 정혼녀를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게 정혼녀가 생김으로 해서 배반감을 갖고 자신을 파괴하기로 했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바람처럼 흔들리다가 덜컥 임신을 해버렸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어쩌면, 누이는 그 무렵에 모종의 의혹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깃털과 털의 차이를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어했던 시절, 육체의 어떤 결핍을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그 결핍을 채우기만 하면 금방 날아오를 것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육체가 날아오르기는커녕 더욱더 중량감을 갖고 자신을 억누르는 데서 오는 참을 수 없는 의혹이 그 무렵의 누이를 압박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도 똑똑하고 눈치 빠르고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 발칙하기 짝이없는 누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은 어머니보다도 한참 늦게서야 알았다. 아니 어쩌면 누이는 아이를 낳는 그 순간에조차도 자신이 아이를 낳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지도 몰랐다.

육체가 벌어지는 순간의 고통이 그녀에게는 어쩌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오르는 사람이 거쳐야 할 첫 번째 관문으로 인식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말해서 누이는 섹스와 임신의 상관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삶에 있어서의 변하지 않는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질서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려 들지를 않았다.

 

이게 뭐야. 이건 내 생각이 아니야. 내 생각은 이런 게 아니었어. 그런데 어디로 간 거야. 내 생각, 내 생각이 어디로 가버린 거냔 말이야.”

생각이라는 것이 가령 분홍빛 속옷이라든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잡을 수도 있는 그런 것일 수도 있을까. 그 무렵의 누이에게는 그런 것인 것 같았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실제로 자신의 생각이 눈에 보이고 있는 듯한 눈치이기도 했다. 다만 그것을 손으로 잡을 수가 없어서, 보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가 않아서 배반감을 느끼며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도토리라든가 알밤 따위들을 찾아 헤매는 다람쥐들의 부산한 소리가 하루 종일 수상하게 들려오는 계절의 어느 날 어머니가 누이를 불러 앉혀놓고 조목조목 따지며 날짜를 꼽아보라고 했을 때도 누이는 그랬다.

 

엄마는 자꾸 왜 이래. 난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단 말이야. 왜냐하면 그건 내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보여줘? 내 생각을 엄마한테 보여줘?”

누이는 마치 자신의 뱃속에 그 생각이라는 것이 들어 있다는 듯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 어머니를 놀라게 했다. 이런저런 험하고 어이없는 세상사를 두루 거쳐 온 어머니도 그 앞에서는 말문을 잃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거기서 자칫 한 발만 잘못 나아가면 누이가 정말로 자신의 배를 갈라서 뭔가를 끄집어내 보이겠다고 나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아마도 어머니의 입을 다물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나 자신도 누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누이의 몸에서 마침내 피투성이의 생명이 빠져 나왔을 때도 나는 그것이 요괴의 장난으로 인한 헛것이거나 최소한 꿈의 어느 한 토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황당하고 조리 없는 얘기지만, 그 무렵의 나는 누이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싶고 그리고 그 말을 믿고 싶다는 쪽이었다. 아니 거의 백퍼센트 신뢰하고 있었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니었다.

누이를 임신하게 만든 그 사내를 당장에 쫓아가서 허리를 동강내 버리겠다고 이를 갈면서도 당장에 실행하지 못한 까닭도 결국은 그것 때문이었다. 임신이 아니라 신체에 약간의 이상이 생겼을 뿐이라는 누이의 주장을 내가 굳이 의심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누이의 주장이 감상적인 주장이 아니라 진실로 드러날 수 있게 해달라고 밤마다 법당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를 했다.

 

하지만 누이는 뱃속에 아이를 가졌다는 어머니의 진단이 있은 지 삼 개월이 채 안되어 딸아이를 낳고 말았다. 그 아이가 몇 개월 만에 태어난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작다고 하지만 그 아이는 너무 작았다. 어머니는 조산이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나 일찍 태어난 것인지는 역시 몰랐다. 하루, 이틀, 사흘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누이는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보따리를 싸놓고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엄마, 나 이제 갈 거야. 돈 좀 줘.”

이런, 이런 미친 것이 있는가.”

나 안 미쳤어. 난 나를 알아. 이건 내 생각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찾아야 해. 찾으러 갈 거야. 돈 줘.”

찾다니, 뭘 찾아, 그 놈을?”

내가 미쳤어, 그 놈을 왜 찾아. 내 생각을 찾으러 갈 거란 말이야. 돈 줘.”

네가 지금 무슨 알을 까놓은 줄 아는가보구나. 이년아, 너는 알을 깐 게 아니라 사람을 낳은 거야, 사람을.”

 

알을 낳은 게 아니라 사람을 낳은 거라는 어머니의 그 말씀은 대단히 희화적이면서도 차마 웃어버릴 수 없는 절박한 물음표를 달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하나하나 절절한 이치를 들어가며 때로는 눈물도 흘려가며 얻어맞은 사람처럼 이를 앙다물고 떠나겠다고 우기는 누이의 마음을 돌리고자 애를 썼지만 끝내 그녀의 결심을 번복시키지는 못했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의 그런 측은지심이 누이의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굳혀놓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 무렵의 누이에게는 사람 세상의 질서라든가 어머니의 눈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보다는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고 또 무엇에 속았는가의 문제가 절박하게 가슴을 때리고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어붙는 그 이월의 마지막 깊어진 밤에, 창끝처럼 날카롭게 솟아오른 마당의 서릿발이 냉냉한 흙을 밟고 지나가는 누이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새벽의 꿈에서처럼 들었다.

 

붙잡아야 하나, 말려야 하나, 이불 속에서 무수히 그렇게 중얼거리기만 했을 뿐 나는 누이의 가출을 말리지도 못하고 어머니에게 알리지도 못했다. 말없이 떠나버리는 누이를 잡거나 말리기는커녕 나는 오히려 그녀의 그런 극단적인 출가를 내심으로 반기고 있었고, 화선지로 겹겹이 싸놓은 식칼을 만지작거리며 나도 이젠 때가 되었다, 때가 되었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사뭇 비장해진 마음으로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