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던 내가 소녀를 만나(6)
풍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백만 마리의 바이러스가 한꺼번에 생겼다고 생각해 봐. 사람은 아마 그런 상태를 견뎌내지 못할 거야. 그렇지 않겠어? 세상에, 백만 마리의 바이러스가 한꺼번에 내 입안에 생겼다니. 그런데도 아무렇지가 않은 거야. 왜 그렇지? 나는 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거지? 키스 때문이야. 키스에서 생긴 바이러스는 나를 죽이지 않고 살게 하는 거야.
그녀의 저작 <키스의 힘>중에서
00월 00일
아틸란티스, 아틸란티스, 어깨에 지구를 짊어진 거인 아틸란티스. 때로는 내가 아틸란티스의 직계 후손인지도 모른다는 공상에 빠져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는 미친놈, 실소를 뱉아내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거울에서는 언제나 낯선 사내가 나를 보며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불편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봐. 내 생각으로는 그래.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한 번 한다 셈 치고 내 짐을 꾸려서 친정으로 보내주면 고맙겠어요.”
집을 나간 아내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읽고, 아내 소유의 짐을 트럭에 실어 보내던 날 꿈에 당귀꽃을 보았다. 보랏빛 계통의 작은 꽃들이 둥근 삼각형 모양으로 눈 시리게 피어 있는 당귀밭 옆의 연못에 팔뚝만한 잉어들이 죽어 떠올라 있었다.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물의 온도를 조절해주던 거대한 소나무는 벼락에 맞아 허리가 부러진 채 연못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당귀는 일심암 시절에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가꾼, 눈을 감고 가만히 숨을 들이마시면 가슴이 물고기의 부레처럼 가볍게 부풀어 오르면서 온 몸이 그만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는 느낌을 주는 향기가 아주 아름다운 약초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회색 비둘기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 샛별처럼 방안을 엿보다가 푸르르 날아갔다. 그런데 다시 보니 창은 모두 닫혀 있고 비둘기가 앉을만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면 그것은 꿈이었나?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환상이었나?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그것이 어느 세상에 속한 것일까에 대해 나는 아침부터 온 종일 깊이 연구를 해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것을 잊어버리고 짙은 오렌지 빛으로 유리창을 채색하는 노을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어쨌든 나는 흐뭇했다. 아내의 짐을 내 손으로 꾸려서 차에 실어 보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아내가 만일 직접 와서 자기 것을 자기가 손수 싸서 가져갔다면 나는 아마 섭섭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할 일이 너무 없어져 버리니까.
00월 00일
오랜만에 텔레비전을 보기로 했다. 감옥을 탈출한 어떤 남자에 관한 뉴스가 십 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앵커의 얘기에 따르면 그는 도둑이되 째째한 도둑이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그는 잘 생겼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다방면에 걸쳐 전문가 뺨치는 소양을 갖고 있어서, 아마도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여자들의 도움으로, 물샐 틈이 없다고 하는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유유히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탈옥수에 관한 뉴스가 끝나고, 이번에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한 여학생들의 얘기가 나왔다. 여학생 셋이서 죽기로 맹세를 하고, 그 맹세를 유서로 남겨놓고, 한날 한시에 똑같이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는 얘기였다. 여학생들의 자살에 관한 뉴스가 끝나고, 뒤를 이어 왕따를 당하던 초등학교 남학생이 죽으려고 식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었으나 죽지는 않고 위독한 상태라는 뉴스가 나왔다. 그때 어디서인가 쥐 소리가 들려왔다.
텔레비전에서 들리는 것도 같고, 집안의 어디에서 들리는 것도 같고 처음에는 그 출처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한참이나 귀를 기울인 뒤에서야 나는 집안의 어딘가에 쥐들이 살림을 차렸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들 봐라. 나는 들뜬 기분으로 벌떡 일어섰다. 이제야 비로소 할 일을 찾았다는 기분이었다.
그래, 오냐, 내 너희들을 잡아주리라. 잡아주리라.
밤을 꼬박 새워 쥐 한 마리를 잡았다. 거울이 깨지고 냉장고가 엎어져서 얼음 조각들이 뒹구는 난장의 뒤에 겨우 얻은 수확이었다. 그런데 잡아놓고 보니 너무 작고 귀여움마저 느껴져서 기가 막혔다.
저것이 쥐란 말인가. 보드라운 털로 감사인 저 엄지만한 것이 정말로 내가 그토록 잡아 죽이고 싶어 한 쥐새끼란 말인가.
쥐가 그렇게 예쁘고 귀여울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신선하고 충격적인, 그리고 끔찍하고 모욕적인 앎이었다. 나는 왜 여태 그것도 몰랐는가? 꾹 다문 하얀 이빨 사이로 붉게 번지는 피를 보고 있자니 까닭 모르게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미안함과 죄스러운 마음으로 죽은 쥐를 골똘히 응시하며 사흘을 보냈다. 아무것도 입에 넣고 싶지가 않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았다.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나를 거식으로 몰아간 것은 아니었다. 까닭은 명백했다. 살생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게 가령 나의 본성이라면, 용맹스럽지 못한 자신의 그런 본성이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00월 00일
사흘 낮밤을 침묵과 금식으로 보내다가 흐린 날 바다에 가득 풀어지는 노을처럼 아름다운 색깔의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마셨다. 그러자 내 마음은 갑자기 숲으로 달려갔다.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촘촘히 박힌 나무와 나뭇잎들 사이로 간간이 창끝 같은 햇살이나 겨우 비쳐 들어오는 빽빽한 밀림 속에 나는 서 있었다. 유령처럼.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지 말아라.”
어머니는 가끔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일렀다. 내가 숲에서 자주 기절을 하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나도 숲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흘이 멀다고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무릎이 깨지고 기절을 하고 깨어나서는 멍해서 허둥거렸다.
내가 아직 여덟 살도 채 되기 전의 일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왜 그렇게도 숲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 속으로 깊이 합류해 버리지 못해 안달을 했었는가?
훗날 키에르케골을 읽으면서 나는 그러한 역행이 서양에서는 신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인간들의 어쩔 수 없는 통과의례로 파악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숲에서 감지되는 신의 강렬한 입김을 인간은 나약한 선입견 때문에 거부하고자 하지만, 끝내는 돌아서지 못하고 그것 속으로 더욱더 깊이 안착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신의 입김이라기보다 자연이 인간과의 화해를 위해 연주하는 강렬한 색감의 심오한 오케스트라 같았다.
하긴 그것조차도 인간의 내면을 틀어쥐고 있다는 신이 만들어놓은 무대인지도 모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여덟 살 이전 시절의 나는 숲의 마술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늘상 허둥거렸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숲은 언제나 고요하면서도 부산스럽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뭔가를 감추고 있었다.
날씨가 아주 맑고 바람도 없을 때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체내로 스며드는 산소처럼 뭔가가 익숙하게 나를 감싸고 돌며 거기 어디 바로 옆에 누군가가 있음을 말해주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비가 오는 날에도 사정은 거의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뭇잎이 흔들리거나 혹은 서로 몸을 마주 대고 비벼대다가 찢어지는 소리, 후둑후둑 빗방울 듣는 소리 등이 섞여지는 다양한 변주 외에 특정한 소리는 없는 것 같지만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럴수록 처음의 어지러운 것들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화선지를 먹어 들어가는 먹물 같은 그림자가 눈앞에 펼쳐지면서 온 몸으로 가득 도란도란 수군수군 속삭이는 소리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내 심성에 깔려 있는 모든 경망스러운 것들을 일시에 제압해 버리는 듯한 소리, 그 소리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나는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서서 언제까지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만 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노라면 이윽고 으슬으슬 찾아드는 한기와 함께 갑자기 귀가 크게 열리면서 돌아서지 말아라, 돌아가지 말아라, 실제인지 환청인지 생각해볼 마음마저 감히 내볼 수 없는 그런 소리가 마치 아득한 어느 날의 북소리처럼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부드러우면서도 위압적인, 내 몸이 허공으로 뜨는 것도 같고 벼랑으로 추락하는 것도 같은 느낌의 그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쯤이면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영혼이 온통 만신창이가 되어 헐레벌떡 숲을 빠져 나오면, 어머니의 꾸지람을 약으로 알고 한 사흘 크게 앓고 난 뒤에는 나는 뭐지? 나는 정말로 나인 것일까?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는 그런 의문과 함께 또다시 숲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내 성장의 에너지였고, 내 존재의 밑그림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딱 잘라서 우유부단이라고 정의를 내려준 그것, 그것, 그것 참…….
글쎄, 나는 뭐지? 나는 정말로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나인 것일까?
00월 00일
집을 나섰다.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황학동 고물시장을 어슬렁거리다가 오래 된 삽 한 자루가 눈에 띄어 그것을 샀다. 녹슨 쟁기라든가 망가진 베틀 따위 그야말로 고물들 속에 끼어 있었던 탓으로 저도 덩달아 녹이 슬기는 했지만 한 번도 흙 맛을 보지 못한 새것이었다.
자루는 소나무도 같고 전나무도 같고 판단하기 어려웠다. 역삼각형의 손잡이가 매끄러우면서도 군데군데 흠이 생겨 까끌까끌한 게 어쨌든 느낌이 좋았다. 자루의 중간쯤에 붉은 글씨로 반듯하게 붙여놓은 상표는 풍농, 그것도 마음에 들었다. 느낌이 좋은 그것으로 땅을 파서 나를 묻으면, 내가 풍성하게 썩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문득 막걸리가 생각났다.
막걸리 집에 들렀다가 웬 부랑자에게 내기를 제의받았다. 술값 내주기 가위바위보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가 소설을 쓰는 사람인데 아직까지 한 편도 완성을 못한 까닭에 몹시 가난하다고 했다.
소설이든 뭐든 사람과의 접촉은 내게 별 의미도 흥미도 주지 못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람과의 접촉이 아니라 혼자서 오랜 시간 막걸리를 마셔보는 일인 것 같았다.
“좋아요. 내가 진 걸로 하고, 술을 사 드리죠.”
나는 그에게 따로 간이며 순대 등 돼지의 내장으로 구성된 안주와 막걸리를 시켜주고 돌아앉아 홀로 막걸리를 마셨다.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내게 다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람을 피하거나 무시하면 안 되는 거야. 왜 그렇게 치사하게 세상을 사냐, 응?”
“이런 씨발놈을 봤나.”
나는 벌떡 일어서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내 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그는 코피를 쏟고 있었다. 무엇인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함정에 내가 그만 빠져버린 것 같았다. 더 이상은 외면할 도리가 없어서 나는 그 사내와 하루만의 친구가 되어 저녁 늦게까지 막걸리를 마셨다.
00월 00일
풍농표 막삽을 텔레비전 옆에 반듯이 세워놓고 그것을 보며 유서를 쓰기로 했다. <고모님과 이모부님께 드리는 못난 조카의 마지막 말씀>. 별 생각도 없이 그런 제목을 붙여놓고 대학노트에 가득 유서를 썼다가 찢어버리기를 네다섯 번, 그러는 동안 열 며칠인가가 흘렀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별 일 없느냐는 내용의 쓸데없이 친절한 안부전화가 한 번 왔고, 지난 번 경매에서 낙찰을 받았다고 하는, 목소리만으로도 단정하고 점잖은 귀부인을 연상케 하는 여자에게서 진행에 차질이 없겠느냐는 내용의 확인전화가 한 번 왔을 뿐 대체로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그 평화의 무게가 버거웠던 것일까. 가버린 아내의 냄새가 그립기도 하고, 후배에 대한 곱지 않은 감상으로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유서는 아무리 써도 청승맞고 지리멸렬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의 저 아래층에서 흐느적거리는 해파리 같은 피해의식을 버려야 한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애초의 결심을 곧잘 망각하고 있었다.
내게 고모는 없었다. 고모라고 하는 어감이 좋아서, 내게도 고모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오래 전 유년기부터 있었을 뿐이었다. 이모부 역시 없었다. 앞서와 마찬가지 이유로 이모부라고 한 번 불러보고 싶은 것일 뿐이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그 정도쯤은 세상도 나를 양해해 주리라고 믿었다.
제목을 바꾸기로 했다. 제목이 어딘가 청승맞아서 내용도 그렇게 흐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제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원망과 나 자신에 대한 변명을 유서 한 장에 함축적으로 풀어놓고 싶은 유혹을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정직하게 내 생각을 말할게요. 한 마디로 요약해서, 난 가난하고 우유부단한 생활에 나를 묻어버릴 자신이 없어. 내가 굳이 이런 말 안 해도 당신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거야. 내가 당신을 만날 당시에 당신이 가난한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절대로 인연을 맺지 못했을 거라는 거, 알지요?”
아내는 정직하고 떳떳했다. 대웅전 한 채를 지을 수도 있는 돈을 훔쳐들고 나왔던 그 시절에 나는 확실히 부자는 부자였었다. 타인에게도, 자기에게도 정직한 사람은 이러니 저러니 구차한 이유를 끌어들이지 않고 언제나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생각을 딸 잘라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보았다. 그렇게 보자면 나는 하나도 정직하지가 못했다. 부부의 조건은 재물이니 명예니 똑똑함 따위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던 나는 아내가 내 사랑을 믿고 계속 부부로 존속해 주리를 바라고나 있었을 뿐이었다.
아내에 대한 나의 감정이 전폭적인 사랑인가도 사실은 의문이었다. 아내를 잃고 싶지 않다는, 아내가 없는 초라한 젊은 홀아비로 추락하기 싫다는 불안을 은폐시킬 목적으로 사랑을 도용한 것일 수도 있다는 혐의로부터 내 스스로가 자유스럽지를 못했다.
“게다가 난, 당신도 대강 눈치는 채고 있었겠지만, 다른 남자를 사랑하고 있어요. 이름을 말하면 당신도 아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지금 그 이름을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언제인가는 당신도, 그래요, 당신도 그가 누구인가를 알게 될 거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날도 있겠지요. 사람은 사람으로 살고 있는 이상 사람의 세상을 벗어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살려고 하는 이상은 굳이 벗어나야 할 필요도 없을 거고. 아무튼 내 결심은 확고하고, 그리고 당신의 양해를 바라지는 않아요. 다만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지. 사람의 관계라는 것에 대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절대적인 신뢰도 사랑도 불가능하고 절대적인 원수도 없다는 거에 대해서,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내는 쉬지 않고 열심히 계속 말하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어차피 절대적으로 믿을만한 것은 못 된다는 얘기, 그래, 그렇겠지, 사랑도 신뢰도 원수도, 사람의 마음을 거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다 살아서 움직이는 동물처럼 가변적이고 제멋대로인 것이겠지. 그래야만 되는 것이겠지.
아내가 정직하게 자신의 심중을 토로하고 있는 동안 나는 줄곧 구름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비겁하게, 삼천의 궁녀가 서로의 치맛자락을 따라 차례차례 낙화했다고 하는 그 백마강 언저리에서였다. 푸른 강물 속으로 물고기처럼 여러 가지 모양의 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그 구름의 위로 후배의 얼굴이 따라서 흘렀다.
아, 그날은 백마강이 아니라 한강이었다. 한강, 제1한강대교 위에서 후배와 나는 만났다. 수표며 어음이며 통째로 들고 사라진 후배가 육 개월여 만에 보고 싶다고 연락을 취해 왔다. 보고 싶다고? 그래, 나도 보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혼탁한 수면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떠서 흘렀다. 다리의 난간에 배를 붙이고 엉거주춤 서서 구름이나 내려다보고 있는 내게 후배는 말했다.
“사회윤리의 측면에서 보자면 속이는 사람보다 속는 사람이 나쁠 수도 있다는 거, 선배는 이걸 아셔야 합니다.”
후배는 솔직했다. 솔직한 사람은 매사에 집중력이 강하고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끄집어내어 자신의 재산으로 확보하고 있기 마련인가 보았다. 나는 솔직하지가 못했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냐의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지도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렇게 생각이 없는 생각에 치여 나날을 헐값에 소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만약에 선배님이 경찰서를 찾아가서 나를 즉각 지명 수배했다면, 나는 수표와 어음을 처리하러 은행에 들어가는 순간 체포됐을 겁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당연히 해야 할 절차를 무시하고 나를 기다리기만 했어요. 그렇죠? 그 이유가 뭡니까. 아니 이유가 있기나 한 겁니까? 왜 말을 못하시죠. 내가 얘기할까요. 선배님은 자신의 믿음을 훼절당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아집이죠. 후배에 대한 자신의 믿음, 그 믿음에 대한 집착, 그럴 리가 없다는, 그놈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는, 내가 사람을 잘못 봤을 리가 없다는 어이없는 자만심, 집착, 내가 저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겼는데 제놈이 나한테 그럴 수야 없다는 근거도 무엇도 아무것도 없는 확신, 틀렸습니까. 인간의 그러한 아집과 오만이 순정한 사람을 범죄의 길로 유혹하고 세상을 어지럽게 만든다는 거, 선배님은 무엇보다 그걸 먼저 아셔야 합니다. 아셔야 해요. 아시겠습니까?”
산 채로 해부를 당하는 기분이었다고 하면 말이 좀 될는지 모르겠다. 날카로운 메스로 가르고 찢어서 내용물을 꺼내들고 자 봐봐, 이것이 바로 그것이야, 이것이 바로 네가 너라고 믿고 있었던 그것이라니까, 하고 말해주는 듯한, 친절한 외과의사의 사형선고와도 같은 후배의 매서운 진단에 대해서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할 말이 없다.
딴에는 서릿발 같이 차가운 마음으로 시작한 유서의 문투가 지리멸렬 청승맞게 흘러버리는 이유도 결국은 그것일 것이었다. 아집. 아집은 무엇인가? 내가 나에게 바치는 사랑이 넘쳐서 흐르다가 굳어버린 거품 같은 것이겠지.
어쨌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경매로 넘어간 집을 비워줘야 할 날이 며칠 안 남았다.
00월 00일
고물시장에서 만난 그 사내가 자꾸 떠올랐다.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취재 삼아 거리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했으나 자유를 알아버린 탓에 소설가는 되지 못하고 부랑자가 되어버린 사내. 그 사내에 대한 나의 앎은 그 정도로 막연하고 불완전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는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한 마디로 말해서 친숙하고, 보고 싶었다. 그를 보고 나면 내 자신의 당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 같기도 했다.
“어이 친구, 또 만났군. 오늘도 술값은 자네가 담당하겠지?”
“자네는 나의 스승인데 어련하겠나.”
“스승이라, 스승, 친구가 아니라 스승이라, 어헛, 좋아, 좋다구.”
그는 조만간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고 했다. 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으로 굳어진 사람이 새삼스레 무슨 여행 계획인가 싶었지만, 그러나 우습지는 않았다. 우습기는커녕, 그는 어쩌면 여행이 필요한 시점에 들어서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서 일어났다.
“여행이라니까 혹시 낭만적인 에로티즘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는데 말이야. 설마 그런 유아적 상상에 정신을 파는 건 아니겠지?”
그가 내 얼굴에 자신의 눈을 총알처럼 쏘아 보낼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소설가 아닌 소설가. 그는 나를 아직 물가에 보낸 어린아이로 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안쓰러웠다. 그가 아니라 그 어떤 것이, 나도 아니고 그도 아닌, 딱히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뭔가가 자꾸 안쓰러웠다.
“난 말이야. 이제 때가 된 것 같아. 떠나야 해. 떠나지 않으면 안 돼. 어디로 왜 떠나느냐고 묻는다면 난 할 말 없어. 그걸 말할 정도가 된다면 아마 떠날 필요도 없을 거야. 그렇지 않겠나?”
그의 말을 온전히 다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겠다는 느낌은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부랑자 생활에도 이력이 붙어 버려서 바로 그걸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는 삶의 방법에 대해서, 자기도 모르게 익숙해져 있는 편안한 삶의 방법을 익숙하게 찾아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서 그는 매번 깜짝깜짝 놀라며 환멸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때로 살아가기 어려운 삶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는, 편안한 삶이 오히려 불편하고 끝내는 지옥이 돼 버릴 수도 있다는, 그는 아마 내게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럴 것이다. 그런 사람은 행선지도 정할 수 없는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이다. 여행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마음이 무거웠다. 우울과는 다른 성질의 무거움이었다. 우울은커녕 뭐랄까, 가슴에 가득 사랑이라든가 희망이라든가 뭐 그런 추상적인 것을 껴안은 듯한 기분을 그는 내게 주고 있었다.
그와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두툼한 책을 한 권 주웠다. 가로의 쓰레기통 옆에 버려져 있었다. 표지가 아래쪽으로 삼분의 이쯤 뜯겨나간 탓으로 위에 남은 제목이 유난히 돋보였다.
<풍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그것을 주워 들고 한참 동안 내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곧 죽기로 한 사람이 책은 뭐에 쓰려고 주워 들었을까.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다시 버리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도로 주워 들었다.
버렸다가 금방 돌아서서 다시 주운 것은 아니었다. 시간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십 분 이상을 어쩔까, 어쩔까, 고민하다가 허리를 구부렸다. 그리고는 누가 볼 새라 후다닥 주워 들고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떠났다.
차라리 소설을 한 편 써볼까? 방문을 여는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형식을 빌린 유서, 아니 유서의 형식을 빌린 소설, 흐흠, 그것도 괜찮겠군.
00월 00일
원고지를 샀다. 팔천 장. 왜 굳이 팔천 장씩이나 원고지를 사고자 했는가는 나도 모르겠다. 문구점에서 그것을 살 때는 팔천이라는 숫자가 보잘 것 없이 느껴졌다. 너무 적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있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책상 위에 쌓아놓고 보니 너무 많아서 아득했다.
도대체 나는 왜 팔천 장이나 되는 원고지를 사 들였는가? 팔천 장이 아니고 팔만팔천 장이었다면,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필요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팔천이다. 왜 팔만팔천이 아니고, 팔백팔십도 아니고 하필 팔천 장의 원고지를 사 들고 왔던 것이냐, 왜.
그래, 아 그래, 그랬다. 정말로, 원고지를 살 때는 그랬다. 아무런 의심도 없었고, 무게도 없었다. 그냥, 소설 한 편을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아니, 소설을 썼다기보다는 차라리 나 자신이 한 편의 소설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소설을, 그것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원고지를 주문하고 대금을 치르는 순간 내가 마치 예전의 나를 벗어버리고 소설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격체로 부활을 해서 됐어, 됐어, 그런 것 같았다.
정말로, 내가 한 편의 소설이 되어서, 그 주인공이 되어서, 그 주인공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됐어, 됐어, 그런 것 같았다. 그것은 가벼움도 아니고,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움도 아닌, 마치 코끼리가 날개를 달고 사뿐사뿐 날아가는 것도 같은, 심장이 편안하게 잠드는 듯한 느낌의 안도감이 있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팔천 장이나 되는 원고지를 쌓아놓고 그것을 바라보자니 소설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명이 되어 나를 거부하고 조롱했다. 웃기지 마, 핑계지? 괜히 한 번 폼이나 잡아보고 싶은 거지? 하고, 그렇게, 아직 쓰지도 않은 소설이 사생아처럼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서 나를 비웃고 조롱하며 키득거렸다.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핑계. 삶을 연장하고자 하는 얄팍한 술수. 소설을 쓰겠다는 발상의 근원이 어쩌면 그것이었는지도 몰랐다. 만약에 원고지가 팔만팔천 장이었다면, 나는 아마 그것으로 불을 질러 내 몸을 태워버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팔백 장이었다 해도, 나는 아마 그것을 한 장 한 장 소리나게 찢어가면서 내 운명의 비상(非常)함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팔천 장은, 무게를 초월해버리기에는 너무 가볍고, 그냥 한 장씩 찢어가며 청승을 떨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어쩔 것인가. 나는 팔천 장의 원고지와 풍농표 막삽을 책상 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앉아 음악을 들었다. 우울한 일요일, 두 달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헝가리의 희망 잃은 사람들을 백팔십여 명이나 죽음의 길로 인도했다고 하는 그 음악을 저녁부터 아침까지 듣고 또 듣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00월 00일
돌아서지 말아라.
돌아가지 말아라.
꿈이었을까. 오랜 세월 잊고 지낸 그 소리가 나를 노크하고 있었다. 내 안에 들어와서 나를 지배하고자 하는 제국주의자, 딱히 반가울 것도 없었지만 싫지도 않았다. 나는 서른셋의 나이를 털어버리고, 열 살 이전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위태롭게 흔들리며 쏟아지는 날카로운 햇살이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바람소리며 새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음악처럼 감미로웠다. 곧 이어 평화는 깨지고, 바위를 짜개는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섬광이 터지며 거대한 나무가 뿌지직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 이제 그만 일어서야 한다. 돌아서야 한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벌떡 일어섰다. 팔천 장의 원고지를 배낭에 꾸려 넣고, 풍농표 막삽을 어깨에 메고 거리로 나섰다. 돌아서야만 했다.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의 바닥에 착 깔려 있는 유서깊은 거역의 몸짓, 이 몸짓은 내가 의도한 게 아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거기에 내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회의나 망설임 따위가 끼어들 틈은 이제 없었다. 며칠 뒤에는 집을 비워야 할 입장이었다. 내 스스로 비우지 않으면 쫓겨나게 될 것이었다. 한때는 내 집이었지만 이제는 내 집이 아닌, 소위 돈이 될 만한 물건은 하나도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경고의 딱지가 도처에 붙어 있는 집의 여기저기에 나는 열심히 작별인사를 하고 조용히 집을 나와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는 간다. 잘 있거라, 집아, 집, 아집, 아집(我執)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