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던 내가 소녀를 만나(3)
죽은 자의 추억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뒤에서, 내 뒤의 갈대 속을 누군가 은밀히 다가오고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극도로 긴장한 발자국소리가 아주 가까이서 들렸다. 아니 그 소리는 멀리서도 들려왔다. 갈대가 부러지고 갈잎과 갈잎이 서로의 몸을 비벼대며 거기 어디에 길을 잘못 든 영혼들이 웅성거리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누굴까. 누가 나를 따라오고 있는 것일까. 갓난아이를 두고 가출한 누이동생일까. 칡넝쿨에 목이 졸려 흙으로 묻힌 나의 정혼녀인지도 모른다.
그녀들은 두려움이 많을 뿐만 아니라 수줍음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보리밭이나 갈대 속에 몸을 숨기고 시체처럼 가만히 있다가 느닷없이 꺅, 하고 뛰쳐나와 사람을 놀래키는 장난기도 제법 있었다.
한 무리의 박새가 갈대 속에서 후르르 날아오르더니 노을 속으로 들어간다. 박새는 겨울새다. 겨울새, 그들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아마도 노을이라는 이름의 오렌지빛 배를 타고 이사를 가려는 모양이다.
“오빠 나 저거 한 마리만 잡아줘.”
“저건 새야, 새를 잡아서는 안 돼.”
“안 잡아주면 나도 쟤들처럼 날아가 버리고 말 거야.”
“그래도 안 돼.”
나는 그때 누이가 정말로 날아가 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움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누이는 아직 날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멀어져 가는 박새를 쳐다보며 울먹이던 누이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저녁에 밥도 안 먹고 슬프게 울고만 있는 누이의 어깻죽지를 잡고 흔들면서 달래보던 어머니는 무슨 까닭에서인지 당신도 같이 울고 있었다. 산신각 추녀에 매달린 풍경에서 딸그랑딸그랑 청아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누이는 울음을 그치고 두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밥숟가락을 내려놓고 시선을 천장으로 향한 채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풍경 소리에 정신을 팔던 누이가 이번에는 깜짝 놀라서 어머니를 달랬다.
“엄마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어머니가 우는 까닭은 누이가 울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마 울지 않으려고 해도 울지 않을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울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우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일렁거리는 촛불에 비치는 어머니의 눈물은 아닌 게 아니라 슬픔이라기보다는 짙은 안개 속으로 엷게 펼쳐지는 노을처럼 애애하면서도 요요하니 까무룩한 뭔가를 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머니를 달래던 누이는 결국 자기도 같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사과를 가운데로 딱 잘라놓은 것 같은 모양의 달이 떠서 창호지를 기웃거릴 때까지도 잠을 못 이루고 옆방에서 두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가 서리꽃이 하얗게 핀 매화나무 밑에 오줌을 누었다. 그리고는 산신각으로 달려가서 딸그랑딸그랑 소리를 내는 그놈의 풍경을 떼어 버렸다. 대웅전 처마에도 풍경은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 높아서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다. 장대를 휘둘러도 떨어지지 않고 소리만 더 요란해서 아무래도 사다리가 있어야만 될 것 같았다. 나는 사다리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날이 밝자마자 산신각을 에워싸고 있는 잣나무와 향나무를 베어 넘겼다.
그것이 가령 미친 짓이었다면, 나의 그 미친 짓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은사골의 박수에게 시집을 가느니 어쩌느니 설왕설래가 시작된 이후로 갑자기 젖가슴을 닫아버린 누님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내게 젖가슴을 개방했던 누님은 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선 채로 숨만 쌕쌕거리고 있다가는 어머니에게 일렀던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고 법당으로 들어가서 만수향을 피워놓고 나를 불렀다.
나는 내 종아리에서 피가 빗물처럼 흐르기를 기대하며 기꺼이 종아리를 걷어 올렸지만 피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너는 앞으로 소나 기르는 게 좋겠다.”
“소요?”
“그래, 일찌감치 장가가서 애 낳고 소나 길러야겠다. 그렇게 알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도록 해라.”
머지않아 머리를 깎아야 한다는 생각 외에 그 어떤 삶의 방식도 고려하지 않고 있었던 그 무렵의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그까짓 머리쯤 깎아봐야 도로가 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사실은 아주 부당한 것만도 아니었다. 사실로 나는 반야심경을 오백 번도 넘게 읽었지만 책이 없이는 절반도 기억을 못했다. 누이는 백 번도 안 읽었지만 다 외웠다.
누이는 열한 살이 되어 머리를 깎았다. 그러나 두 해를 넘어서면서부터 가슴이 마구 부풀어 오르자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읍내를 나다니기 시작하더니 머리를 도로 기르고 싶어 했다.
누이는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지만 모든 면에서 나를 앞질렀다. 사흘이 멀다고 밤이면 잠자리를 빠져 나와 모자를 눌러쓰고 가만히 읍내를 다녀오는 그녀는 때로 달큼한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담배도 곧잘 피우는 눈치였다.
읍내의 건달 가운데 누이를 모르는 사내꼭지는 하나도 없다는 소문이 짜하게 나돌 즈음 어머니는 누이를 법당으로 불러 아미타불에게 삼배를 하게 한 다음 또 한 차례 눈물을 흘렸다.
“에미가 너에게 못할 일을 했지 싶구나. 일찌감치 시집가서 아이 낳고 돼지나 치며 살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돼지요?”
“그래, 이년아.”
말이야 그렇게 험상했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담담했다. 눈에는 토란잎을 구르는 아침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그것은 분노나 실망이기보다 차라리 안도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누이는 어머니의 그런 결정이 자기에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가 없다는 듯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눈만 깜빡거렸다. 그러다가 기어이 주룩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런 누이의 어깨를 부둥켜안고 해가 이울어 사방이 빽빽한 나무숲처럼 음울해질 때까지 등을 토닥거리며 독송을 했다.
어머니는 알면서도 아는 것이 없고 모르면서도 모르는 것이 없는, 그래서 자신에게는 울어야 할 이유가 별로 없어도 타인의 울어야 할 이유 때문에 당신이 먼저 울어야만 하는 그런 지독한 운명을 타고 난 여인이라고 나는 그때 막연히 생각했다. 다음날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저녁 공양을 마치자마자 바랑에서 화학섬유로 만든 분홍빛 속옷이며 스타킹 따위들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누이에게 주었다.
“아나 이년아, 이것부터 시작해봐라. 네년의 그 허망한 몸뚱이에다 색을 입혀보란 말이다.”
누이는 벌어진 입을 채 다물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감물 들인 뻣뻣한 당목 겉옷을 훌훌 벗어버리더니 속옷들을 움켜 들고 산신각으로 달려갔다.
새하얀 수염의 산신을 태운 호랑이 앞에 세 번 절을 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속옷차림 그대로 돌아온 누이는 아주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속옷을 분명히 입기는 입었는데도 입은 것 같지 않고 맨살처럼 느껴지는 누이의 갑자기 이상해진 몸을 보고 있자니 나는 그만 눈알이 빠져버릴 것 같았다. 달려가서 그냥 만져보고 싶고, 꼬집어보고 싶고, 냄새를 맡아보고도 싶었지만 그러나 어째서인지 손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이게 바로 요괴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부처가 되기 전의 시타르타 앞에 나타나서 발가벗고 춤을 추었다는 그 요괴 말이다.
그런데도 누이는 조금도 낯설어하지 않고 오빠 나 어때? 하면서 무슨 마술을 부리듯이 선 채로 자신의 몸을 팽이처럼 팽그르 돌려 보이고 있었다. 그때 팽그르 돌아가는 누이의 몸에서 강렬하게 발산된 잘 익은 복숭아의 과육 같은 냄새를 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어쨌든 내게는 잘된 일이었다. 나는 곧 장가를 가야하고 누이는 시집을 가야 한다. 멀리서 짝을 찾는 수고로움이 필요할까? 아니었다. 아닐 것이다. 그랬다. 나는 어머니가 누이를 내게 시집보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아내가 될 여자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용계사 법운 스님의 청을 받고 누구인지 객사한 주검을 다독거려 주러 나갔다가 이틀 만에 돌아온 어머니가 새로운 딸 하나를 데려왔다. 해가 떨어지고 사방이 장삼처럼 희부염해지면 기러기들이 그물처럼 길게 기역자로 산개해서 하늘의 물고기를 몰고 북으로 날아가던 무렵이었다.
그녀는 계절풍처럼 검은 숫염소 한 마리를 몰고 동쪽에서 왔다. 해마다 봄이면 강릉에서 출발하여 동해안 길을 따라 계속 남하하다가 남해안 어디 아무 데서나 겨울을 나고 버들개비에 물이 오르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다시 강릉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떠돌이 뻥튀기 장사의 딸이었다.
아버지가 객사해 버리는 바람에 혼자가 되어 넋이 빠진 채로 용계사의 종루 밑에 우두커니 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던 중에 어머니의 눈에 띄어 딸이 되기로 했던 거라고 했다.
그녀는 누이보다 한 살이 많았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도 충분히 책임감을 갖고 기를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 나이가 스물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나이가 스물을 넘으면 인근 마을에 움막을 짓거나 집을 빌리거나 어쨌든 방 한 칸 마련해서 둘이만 살게 해 줄 거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스무 살을 넘어서까지 어머니의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는 어쩌면 아들이니 딸이니 하면서 데려다가 기르는 집 없는 아이들이 스무 살을 넘어서까지 머리를 기른 채로 곁에 두고 있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누님도 머리를 깎았으면 사정이 달라졌겠지만, 머리를 깎지 않았기 때문에 스물을 넘어서자마자 어머니의 곁을 떠났다.
누이와 나의 정혼녀는 내가 없을 때는 서로에게 무척 자상하고 깊은 정을 나누기도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있을 때는, 그러니까 세 사람이 같이 있을 때는 무슨 까닭에서인지 두 여자가 아무 일도 아닌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등 서로를 금방이라도 잡아서 뜯어먹을 듯이 노려보며 무섭게 으르렁거렸다.
그 바람에 나는 밥상에서조차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고, 가끔은 아침 일찍 말없이 산을 빠져나와 터덕터덕 한나절이나 걸어서 마당바위를 지나 은사골 면소재지 근처의 누님 댁으로 스며들어 끼니를 해결하는 등 항시 죄를 짓는 기분으로 스스로를 소외시켜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