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어떤 살인(3)

두꺼비네 맹꽁이 2021. 1. 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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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하루 종일 컴퓨터 했구나, 엄마?”

아니야, , 엄마가 집에서 얼마나 바쁜데 컴퓨터 따위 만질 시간이 어디 있다고 그런 소릴 해에?”

, , 또 거짓말 한다. 이리 와서 만져봐. 이렇게 뜨거운데, 이래도 안 했어? 거짓말도 정도가 있어야지, 언제나 철이 들래, ?”

에고, 미안하다. 엄마가 그만 깜빡 했지 뭐냐.”

안 돼. 그 정도로 넘어갈 수는 없어. 엄마씩이나 돼가지고 말이야, ? 딸년 앞에서 거짓말이나 직업처럼 해대고 말이야.”

알았어, 알았어. 조만간 최신형으로 교체할 거니까 그만 화 풀어, ? 이제 그만 용서하고 얼른 숙제 해. ?”

 

엄마는 딸년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에 쥐가 된다. 네 죄를 네가 알아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딸년의 시퍼런 서슬 때문만은 아니다. 중학교 2학년 그 어린 나이에 날마다 중요한 숙제를 해야 하는 딸년의 못생긴 얼굴이 안쓰러워서만도 아닐 것이다. 사람은 열을 받으면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데 컴퓨터는 반대로 게으름뱅이가 되어 버린다는 그 이상한 법칙이 엄마를 아득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딸년의 중요한 숙제란 것은 말하나마나 중요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딸년 자신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임이 분명하다. 거기에 딸년 자신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걸려 있는 숙제를 하는데 컴퓨터의 속도가 느리거나 갑자기 멈추거나 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딸년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 푸념을 쏟아낸다.

 

텃밭 나쁜 것 가진 것도 억울한데 응? 엄마라는 사람이 이렇게도 사사건건 딸년의 앞길을 막아서야 말이 되겠어, 되겠냐고.”

 

그것은 일종의 경고다. 지금부터 엄마는 눈에 띄지도 말고 발자국 소리도 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최후통첩이다. 툭하면 텃밭 어쩌고 쫑알거리는 딸년의 입이 엄마는 사실 무섭다. 무섭고 미안해서 주방으로 슬슬 뒷걸음질을 치고 만다. 이렇게도 딸년의 계산은 척척 맞아떨어지고, 이제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어제 하다 만 얘기 있잖아. 그거 계속 해줘. 해줄 수 있지?

넌 어떻게 된 애가 하다 말고 그냥 나가 버리냐?

오빠 때문이야.

오빠가 왜?

오빠 들어오면 컴퓨터 뺏기거든.

무슨 그런 경우가 다 있어.

우리 집은 그래.

거긴 어느 나란데?

대한민국은 아닌가봐.

몇 세기를 사는 건데?

아마 십구 세기쯤 되겠지.

그래서 탈출이 필요한 거구나?

그렇지 뭐.

보다 어제 하다 만 얘기 말이야.

아 그거. 먼저 남자를 정확히 알아야 해. 알지만 아는 것 같지 않게 보여야 해. 이것이 중요해. 모르고 했는데 그것이 남자를 아주 즐겁게 해준 것처럼 보이는 것. 아저씨들은 이런 여자를 명기라고 부르거든. 명기를 만났는데 지갑이 아깝겠냐. 더블은 기본이고 별도의 팁까지 붙을 수도 있어. 생각해봐. 그럭저럭 대충 해주고 약속이나 보장받는 게 좋겠냐 아니면 기술을 익혀서 약속 이상을 챙기는 게 좋겠냐. 기억해둬. 몸만 가지고 되는 장사가 아니라는 걸. 나이 어리다고 무조건 좋아하지만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해.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태어나면서 배웠겠냐. 관심을 두니까 배워지게 된 거지.

그러니까 관심이 필요한 거구나.

당근이지. 거리를 다니면서도 잘 봐야 해. 잘 보다 보면 한눈에도 척 알 수 있게 돼. 아 쟤는 지금 무슨 운동을 하고 있구나, 그 운동으로 익힌 기술로 몇 남자는 거뜬히 요리했겠구나, 등등 그런 것들을 한눈에 척 알아볼 정도는 되어야 해. 너 케겔운동이라고 들어봤어?

아니.

남자를 조여주는 기술인데 말이야. 이것이야말로 명기의 제일 조건이거든. 이 운동은 뭐 돈이 드는 것도 아니야. 구슬이 몇 개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별 상관은 없어. 그냥 맨몸으로 집에서도 할 수 있고 학교에서도 할 수 있고 거리에서도 할 수 있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 쉬운 것일수록 사실은 쉽지가 않다는 법칙은 너도 알지?

그런데 왜 남자를 조이는 기술을 익혀야 해?

그거야 남자가 좋아하니까 그렇지. 원리는 간단해. 고무 밴드로 목을 묶는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럼 남자는 목이 묶이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네?

뭐 그렇다고 봐도 되겠지. 어쨌든 말이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껌값이나 몇 푼 얻자고 나서는 거라면 일찍 관두는 게 좋아.

난 껌값 정도가 아니야. 엄청 많이 필요해.

넌 탈출을 무슨 기업 세우는 걸로 착각하는 것 같다? 바보야 탈출은 그냥 탈출인 거야. 그 뒤의 일은 그 뒤에 해결해야지. 그게 사는 거지.

근데 말이야. 난 사실 탈출보다는 간판을 고치는 게 급해. 너무나 엉망이거든. 도저히 견적을 낼 수가 없을 정도라니까. 눈 코 입 귀는 당근이고 그 사이의 면적을 좁히고 늘리고 열 손가락으로는 셀 수도 없어.

그러면 넌 어렵겠다.

왜에?

요새는 아저씨들도 아무나 안 받거든. 지원자가 많아서, 면접을 본다는 거야.

그럼 뭐야. 못 생기면 안 된다는 거잖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럼 뭐야. 간판부터 고쳐야 한다는 거잖아.

그거야 뭐.

그럼 뭐야.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연구를 해봐야겠지. 그렇지만 뭐 실망할 필요는 없어. 돼지가 안 예쁘다고 돼지고기 안 먹는 거 봤냐. 어쩌면 기술이 간판을 눌러버릴 수도 있는 거고. 그러고 보니 그렇다. 넌 진짜로 기술부터 닦아야겠다.

에이 씨, 그놈의 텃밭 땜에 이게 뭐냐.

텃밭, 무슨 텃밭?

우리 엄마 말이야. 왜 하필 엄마가 내 엄마가 됐는지 모르겠어. 얼마든지 다른 데서 태어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도대체 무엇이 나를 내 엄마의 딸이 되게 한 것일까. 넌 그거 알 수 있니?

, , 웃기지 좀 마. 그런데 넌 엄마를 싫어하냐.

아니.

그럼 미워하냐.

아니.

그럼 왜 그래.

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나도 사람인데, 사람이 그런 말도 못 하고 사냐.

재미없는 얘긴 관두고, 어쩔 거야.

?

기술 말이야. 할 거야 말 거야.

해야지, 당근 해야지. 그런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오줌을 누다가 뚝 멈추고, 또 오줌을 누다가 또 뚝 멈추고, 그것부터 해야 해.

오줌을 누다가 어떻게 멈춰?

넌 여태 그것도 못해봤냐.

.

바보야, 뭔가에 깜짝 놀랐을 때 저절로 멈춰지잖아.

설명을 좀 더 리얼하게 해봐.

지금 당장 화장실에 가서 직접 해봐. 그럼 리얼하게 느낄 수 있을 거야.

안 그래도 오늘 얘기는 여기서 끝내야겠다. 오빠가 오고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