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탐조등 (2)

두꺼비네 맹꽁이 2020. 12. 20. 15:43

일제 때의 철도

 

두견이는 웃음을 깨물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웃음이라기보다 그네의 얼굴이었다. 입술이 두텁고 눈꼬리가 갸름한 그네의 얼굴이 웃음처럼 생겼다. 그네는 이제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네는 멀리서 들려오는, 잡힐 듯 잡힐 듯 금세 잡힐 듯하면서도 멀어져 가는 어떤 소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곧은 철도를 따라 시선을 길게 던지다 보면 궤도는 시나브로 사라지고 아지랑이만 남았다. 그때 눈길을 옆으로 살짝 돌리면, 두 개의 궤도가 하나로 만나서 마악 사라지려고 하는 그 지점에 갈대로 에워싸인 검은 소금창고가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방울산이라든가 방울산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화장실은 구멍가게에서 보이지 않지만, 멀리에 있는 빈 소금창고는 구멍가게를 지키는 수호신인 양 언제나 그 자리에 어슴프레한 모습으로 눈을 채웠다.

 

두견이는 손님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거의 온종일을 소금창고와 눈싸움하는 일로 낙을 삼았다. 자신의 키보다도 작은 가게의 문틀에 등을 맡기고 비스듬히 서서 고개를 약간 쳐들고, 측백나무와 평상을 뒤로 멀리 뻗어 나가는 아지랑이 속으로 잘게 쪼갠 추억을 던져 넣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문득 콰르릉, 소리가 들려오면 흡사 자신의 살아 있음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잠깐 몸을 떨고, 그리고는 또다시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그네는 지금 어쩌면, 언제나처럼 콧노래와 함께 아지랑이 속의 소금창고를 추억하는 체하면서 그녀는 어쩌면, 측백나무 아래 평상 위에서 노닥거리는 사내들의 동태를 세세히 관찰하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사내는 둘이었다. 두 사람이 동행은 아니었다. 하루에 왕복 세 번 얼굴을 내미는 비둘기호 열차가 잠시 쉬었다가는 이내 가버린 직후에, 얼추 쉬흔 살은 돼 보이는 사내 하나가 불쑥 머리를 내밀고 맥주 한 병을 청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이번에는 서른이 채 못되어 보이는 사내가 들어서더니 역시 맥주를 청했다. 사내들은 측백나무에 매달린 수세미가 탐스럽다느니, 날씨가 제법 뜨뜻하다느니 어쩌고 운을 뗀 다음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따위 건성스런 얘기들을 주고 받으면서 차츰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사내들은 와리에 초행이 아니었다. 두 녀석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모르쇠하고 있었지만, 영광댁은 사내들의 얼굴을 기억에 담아두고 있었다. 중년의 사내는 지난 봄부터 달에 한 번꼴로 찾아왔고, 젊은 사내는 열흘인가 보름 전에 다 죽어가는 낯으로 들어와서 맥주 한 병을 사 들고 한나절이나 평상에 앉아 시간을 까먹고는 어스렁대며 떠났었다. 혼자 들어서는 사내에게 매양 살가운 두견이는 중년의 사내가 어깨를 늘어뜨린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갑자기 허방을 디딘 사람처럼 당혹스런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이어서 젊은 사내가 물고기처럼 눈망울을 굴리면서 들어섰을 때, 그네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는 듯 문틀에 등을 던지듯이 내맡기고 오두마니 서버린 것이었다.

 

만약에 사내가 둘이 아니었다면, 두견이는 틀림없이 맥주 한 병을 앞에 놓고 죽은 듯이 앉아만 있는 사내의 옆으로 발자국 소리도 없이 다가가서 걸레를 들고, 평상 위의 먼지를 천천히 고운 자태로 닦아내면서 에이그 혼자서 무신 재미루……하고 길게 중얼거린 다음 얼른 돌아서서 웃음을 깨물고, 다시금 문틀에 살며시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서서 콧노래를 부르며 소금창고 쪽으로 시선을 던졌을 터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 사내가 둘씩이나 거의 동시에 나타나버린 탓으로, 그네는 지금 뭘 어째야 옳은지 어리둥절해 있는 것이었다.

영광댁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속으로 요년, 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독거렸다. 그렇건만 불안은 여전히 무슨 찌꺼기처럼 남아 있었다. 그게 대관절 무슨 빌어도 못 먹을 여수 짓인지, 영광댁은 며느리의 그런 버릇을 무슨 잣대로 풀이를 해서 자기 것으로 삼아야 옳은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좋은 말로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기도 하고, 모진 욕잔소리로 꾸짖기도 했건만 며느리의 몸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아무 짓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몸뚱이가 근질거리고 쑤시고 견디기가 어렵다는 게 며느리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몸뚱이가 근질거린다고? 숫제 벗어 부치고 화냥질을 하고 싶어 죽겠다고 할 일이지, 빌어도 못 먹고 넉살을 할 년 같으니……

 

영광댁은 소리 안 나게 빠드득 이를 갈았다. 사십 년을 기다려 온 늙은이도 아무렇지 않은데 이제 겨우 십몇 년밖에 안 된 젊은 것이 뭐가 어쩌고 어쩐다고? 어느 여편네가 저런 요망한 물건을 싸질러 놓았는지, 생각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영광댁의 심기는 불편스럽기만 했다.

한 해 두 해, 자다가 깨고 자다가 깨고, 무슨 낮잠처럼 그렇게 흘려보낸 세월이 그새 삼십여 년이었다. 그 해의 여름, 얼굴이며 옷가지에 땟국이 난장으로 흐르는 계집아이를 꽁무니에 달고 바람처럼 나타난 사내는 흡사 길들이지 않은 황소같은 위인이었다. 사내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듣고 왔는지, 들어서자마자 제 집인 양 검정 고무신을 벗어 던지면서 지껄였다.

 

나 내알부텀 쪼오기 소금판서 일할 사람인디, 아짐씨가 내 딸년을 쪼깜 씻기고 멕이고 입혀줘야 쓰겄소. 아따 놀래미 새끼마냥 놀래기는 넨장칠, 아 품삯 주께에.”

 

다짜고짜 밀치고 들어서는 엄장큰 사내를 어떻게 대적해야 옳은지, 젊음이 새파랗던 그 무렵의 영광댁은 숨조차 코로 내쉬지 못하고 입으로만 쉬어야 했다. 이게 뭐람. 어디서 이런 불상놈이 쳐들어왔지. 그런데 어쩌랴. 제 아비의 허벅다리에 얼굴을 묻고 이쪽을 빠곰이 내다보는 계집아이의 또록또록한 눈망울과 마주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사내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이뻐보이던 것이었다.

사내는 불상놈답지 않게 자상스런 면도 있었다. 방이 너무 작다고 기름먹은 판자며 기둥 일습을 염전에서 공으로 얻어다가 방 한 칸을 들여 주기도 했고, 자신의 품삯으로 어디서 왕대를 사다가 평상도 하나 예쁘고 튼튼하게 만들어서 측백나무 밑에다가 구색 좋게 모셔놓기도 했다.

 

그러나 불상놈은 어쩔 수 없는 불상놈이었다. 어찌어찌 석 달이나 겨우 채웠을까. 사내의 짐승스러움이 달게 여겨질 수도 있다는, 미처 몰랐던 몸 안의 부끄러운 것들만 쓸데없이 들쑤셔놓고 사내는 사라졌다. 어디로 간다거나 온다거나 말 한 마디도 없었다. 이제 갓 다섯 살을 넘긴 계집아이만 무슨 흔적처럼 떨어뜨려놓고 사내는 달아나 버렸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갔는지 요량조차 해볼 수 없는 채로 영광댁은 사내가 돌아와 주기만을 기다렸다.

웬놈의 팔자가 두 사내를 엇비슷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지 때로는 피실피실 어처구니없다는 투의 웃음도 없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살아가는 재미는 또 있었다. 예쁜 딸아이 하나 공으로 얻었다는 자족감이었을까.

 

하지만 생각도 없이 절로 일어나는 아주 작은 가시랭이만은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어느 날 영광댁은 공으로 얻은 밉지도 곱지도 않은 딸아이에게 뻐꾸기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그렇게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심코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었지만, 이름치고는 뻐꾸기가 장히 괜찮은 이름인 것도 같았다.

본디 이름은 배꼽 근처에 붉은 점이 있다 해서 점례였지만 어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다 그 아비마저 사라진 마당에 점례는 무슨 점례랴 싶은 억하심정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뻐꾸기는 부르면 부를수록 뻐꾸가하고 부르기가 어쩐지 수월치가 않아서, 일 년쯤 뒤에 다시 두견이로 바꾸었다. “뻐꾸가보다는 두견아하는 게 그래도 입에 붙는 맛이 있다는 느낌이던 것이었다.

 

고 계집아이? 묻지를 마시오. 제 아비가 아침 저녁 나다니던 철둑길만 멀거니 쳐다보는 걸로 일을 삼았제 머. 하기사 혼자 노는 일에 이력이 붙은 가시내가 뭐 달리 할 것이나 있었겠소.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것도 제 어미 품에서 뜨뜻한 사랑깨나 먹어본 애들이 하는 짓이제,그게 어디 아무나 하는 짓이간디…….”

 

이 대목에서 영광댁은 설핏 웃음을 지었다. 결코 서러움이었다고 말할 수 없는, 그렇다고 즐거움이었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는 그 시절은 언제나 그렇듯이 애매한 미소로만 떠오르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그랬다. 영광댁은 굴러온 계집아이를 아들에 못지 않게 귀애하고 옷가지는 아들 이상으로 잘 입히면서 곱게 길렀다. 딸을 기르는 여자의 마음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행복감도 언뜻언뜻 남몰래 가슴에 챙기면서, 좋은 남자를 골라 짝을 지워주겠노라 스스로에게 다짐도 하면서 참으로 친딸 이상으로 길렀다.

그런 계집아이가 어느 날 며늘아이로 둔갑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가져보지 못했다. 그런데 철들면 내 자식도 남의 자식이 되더라고, 계집아이는 아들아이를 오빠라고 부르면서도 마음은 어느새 누이동생 이상의 자리를 탐하고 있었던가 보았다. 그리고 아들아이 역시 오빠의 자리로는 뭔가가 채워지질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들의 입에서 느닷없는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영광댁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여자 팔자 뭐 어쩐다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체념섞인 속설 하나뿐이었다.

 

그러니까 아들의 나이 열아홉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국민학교를 마치자마자부터 염전에서 품을 팔아온 아들이 어느 날 저녁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염전이 머잖아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정제염이 등장한 뒤로 천일염이 통 팔리지를 않는 탓이라고 했다. 도리없이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데 이참에 아주 서울로 나가서 기술이든 장사든 크게 한 번 배워보고 싶다면서 아들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리고는 이어서 결혼 얘기를 끄집어냈다. 어차피 해야 할 결혼이라면 일찍 해두는 편이 좋고, 객지에서 엉뚱한 생념으로 한눈 팔지 못하게끔 자신을 채찍질하는 구실도 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는 거였다. 영광댁으로서는 생각이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면 할지언정 반대하고 나설 이유가 없는 얘기였다. 그러나 속내로는 야속했다. 두 사람이 언제 그렇게 서로를 몸다른 남자와 여자로 보고 있었는가 싶어서 야속했고, 무엇보다 또 한 명의 사나이가 내 곁을 떠나는구나 싶어서 그지없이 야속했다.

실로 내 이 가슴팍에서 애면글면 꿈쩍거리는 머시냐 그, 뭔 소리인지 알 수도 없는 그놈의 소리가 그렇등만. 가는구나, 가는구나, 그러는 것 같더라고…….”

영광댁은 또다시 담배 한 가치를 빼 들었다. 그러나 담배에 불을 붙일 생각은 안 하고 젊은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젊은이는 영광댁의 눈길이 당혹스러운 듯 고개를 약간 수그렸다.

 

아들녀석이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기차를 타고 떠나갈 적에 내 마음이 말이시. 아들을 보내는 것 같지가 않더라고. 생각해봐. 아들이 어째 아들로만 있었겠어. 갈데없는 사나였제.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수 없는 사나 말이시. 사나이들은 그렇게 다들 떠나버리등만. 소금창고가 문을 닫응께 사나이들은 얼씨구나 기다렸다는 것맹키 한 명도 없이 떠나버리더라구. 그리고는 안 돌아오데. 와야 할 사나가 둘이나 셋이나 되건만 하나도 안 돌아와. 기가 맥히덩만. 그리서 은제인가는 생판 낯모를 마음도 먹어 보았제. 하냥없이 기두리고만 있을 일이 아니라 나도 한 번쯤 어디론가 떠나보자고 말이시. 그란디 아 이 늙은 것이 떠나믄 또 어디로 떠나겠어. 저 젊은 것이라믄 다리심 있겠다 살거죽 팅팅하겠다, 허니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다 미친년 맹키 그래볼 수도 있으련만, 쩌그 저 며늘애기 말여. 그란디 저 옹추같은 목숨이 안즉 맛을 덜 봐서 그런지 통 그런 생념을 못 먹어…….”

 

할머니는 그럼, 그러니까 할머니께서는 지금 며느님께서 말없이 떠나 주기를 바라시는 거로군요?”

? 뭐라? 그 무신 오살헐 소리여?”

방금 그러셨는데, 제가 잘못 들었나요?”

내가? 그랬어? 아니 은제? 아녀어, 나 그런 씰데없는 소리 한 적 없어. 이 사람이 시방 먼 소리를 하는겨?”

 

영광댁은 세차게 도리머리를 저어대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철도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