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 찾기

죽음에서 건져올린 삶

두꺼비네 맹꽁이 2008. 1. 22. 22:06
 

 1849년 12월 22일, 세메놉스크 광장-사형 직전의 도스토예프스키


 

 

 밤중에 그들은 그를 잠에서 깨웠다.

 요새의 방마다 군도 소리 쩔렁거리며 울려 퍼지고

 목소리들이 명령한다. 모르는 가운데

 유령처럼 위협적인 그림자들이 움직인다.

 그들은 그를 앞으로 밀어붙인다. 복도가 깊이 입을 벌린다.

 길고도 어둡게, 어둡고도 길게.

 빗장이 끽 소리를 내고 문이 철컥 열린다.

 그러자 그는 하늘과 얼음처럼 차가운 공기를 느낀다.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그것은 굴러가는 무덤,

 그 안으로 그는 밀려들어간다.

 그 앞에는 단단한 쇠창살에 갇힌 채

 말없이 창백한 얼굴을 한

 동료 죄수 아홉이 더 있다.

 아무도 말은 않지만

 마차가 자신들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모두 직감하고 있다.

 아래서 굴러가는 마차가 바퀴살

 사이로 자기들의 생명을 끌어가고 있음을.


 딸그락거리며 마차는 서고

 문이 열린다.

 열린 쇠창살 사이로 그들은

 흐리게 잠에 취한 눈길로

 어두운 세상 한 조각을 바라본다.

 둘러선 집들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사각형의 광장.

 서리가 덮인 낮고 더러운 지붕들이

 어둠과 눈에 덮인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안개는 회색천으로

 刑場을 뒤덮고

 황금빛 교회 주변만을 아침빛이

 서릿발 피흘리는 빛으로 감싸고 있다.


 말없이 그들 모두 광장으로 들어선다.

 소위 하나가 그들의 판결문을 읽는다.

 국가 배신죄에 대해서 총살형.

 사형!

 그 말은 무거운 돌처럼

 고요한 서리의 거울 속으로 떨어지고

 무엇인가가 돌로 쪼개지는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나서 공허한 메아리는

 소리 없는 아침 정적의

 무덤 속으로 가라앉는다.


 꿈 속처럼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났음을 느낀다.

 이제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누군가 앞으로 나서서 그에게 말없이

 하얗게 나부끼는 사형수의 셔츠를 입힌다.

 동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뜨거운 눈길,

 말없는 외침으로

 그는 신부가 진지하게 경고하듯 내미는

 십자가의 성상에 키스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 열 사람은 셋씩

 밧줄로 기둥에 묶인다.

 

 벌써

 코사크 사람 하나가 성급하게 다가와

 총을 보지 못하게 두 눈을 묶는다.

 그리고-그는 안다. 이제 마지막이구나-

 그의 눈길은 이제 눈멀기에 앞서

 탐욕스럽게 저쪽에 펼쳐진

 저 작은 한 조각 세상을 바라본다.

 아침빛 속에 교회가 타오르는 것을 본다.

 최후의 행복한 만찬을 위해서인 듯

 그 접시는 성스런 아침 노을로

 가득 채워져 불타고 있다.

 그리고 그는 갑작스러운 행복감에 넘쳐

 죽음 뒤에 신의 삶을 그리워하듯 교회를 바라본다.


 그때 그들이 그의 눈 위로 밤의 띠를 둘렀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피가 색깔을 가지고 돌기 시작한다.

 모든 것을 비추어주는 물 속에서

 이미 지나가 버린 삶이

 피로부터 솟구쳐 나온다.

 그리고 그는

 죽음에 비쳐진 이 순간이

 한 번 더 자기 영혼을 통과하며

 모든 잃어버린 과거를 씻어 버리는 것을 느낀다.

 그의 전 일생이 다시 깨어나서

 그림이 되어 그의 가슴을 유령처럼 스쳐간다.

 창백하고 잃어버린 잿빛 유년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아내

 세 개의 파편 같은 우정, 두 잔의 즐거움.

 명성의 꿈, 한 더미의 수치,‘

 그리고 그림으로 된 충동이 잃어버린

 청년 시절을 혈관을 따라 굴린다.

 그들이 자신을 기둥에 묶는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살아온 전 존재를

 그는 한 번 더 깊은 내면으로 느낀다.

 사려 깊은 생각이 어둡고 무겁게

 그 자신의 그림자들을

 그의 영혼 위로 던진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느낀다.

 검고, 침묵하는 걸음걸이를 느낀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

 그가 손을 자기 가슴 위에 올려놓는 것을

 심장은 점점 약하게, 약하게, 그러다가 이제 더는

 뛰지 않는다.

 1분이 지나면, 그러면 끝이다.

 코사크 사람들은

 저편에서 사격을 위해 대열을 이룬다.

 총을 맨 벨트는 흔들리고,

 손들은 방아쇠 소리를 내고,

 북이 울려서 공기를 가른다.

 그 1초는 수천 년 나이를 먹게 한다.


 그때 외침 소리 하나,

 멈추어라!

 장교가 앞으로

 나선다. 종이 한 장이 하얗게 펄럭이낟.

 그의 음성은 맑고도 분명하게

 기다리는 적막 속으로 파고든다.

 챠르께서

 그 성스러운 의지의 은총으로

 판결을 취소하셨다. 이제

 판결은 감형되었다.


 그 말들은 아직

 낯설게 들린다. 그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혈관 속을

 흐르는 피는 다시 붉어지고,

 솟구쳐 흐르며 다시 조용히 노래하기 시작한다.

 죽음은 망설이면서 마비된 관절에서 물러서고

 두 눈은 아직 캄캄하지만 영원한 빛이

 둘러싸며 인사는 것을 느낀다.

 형리는

 말없이 묶은 끈을 풀어주고

 두 손이 갈라진 자작나무 껍질 벗기듯

 하얀 천을

 타오르는 관자놀이에서 벗겨낸다.

 비틀거리며 두 눈은 무덤에서 빠져 나온다.

 아직 약하게 눈이 먼 채로

 이미 사라졌던 존재 속으로

 다시 서투르게 더듬으며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 그는

 아까의 그 황금빛 교회 지붕을 본다.

 그것은 이제 떠오르는 아침의 붉은 빛 속에

 신비롭게 불타고 있다.


 성숙한 장미 같은 아침빛이

 경건한 기도로 감싸듯 그 지붕을 감싸고

 반짝이는 기둥머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손으로 성스러운

 칼을 가리킨다. 높이 기쁨으로 붉게 물든

 구름의 가장자리까지.

 그리고 거기서 아침 광채 속으로 소리내며

 신의 교회는 교회를 넘어 자란다.


 빛의

 흐름 하나가 빛나는 파도를

 종소리 울리는 하늘로 던져 올린다.


 짙은 안개가 지상의 온갖 어두운

 짐을 실은 듯 뭉클거리며

 신적인 아침 광채 속으로

 피어오르고,

 깊은 곳으로부터 소리들이 올라간다.

 천 개의 음성이 하나의 코러스로

 노래하듯이.

 그러자 그는 처음으로

 지상의 모든 고통이

 열정적으로, 트는 듯한 아픔을

 땅 위에 대고 소리치고 있음을 듣는다.

 작고 약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자신을 바쳤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 여자들의 소리

 자기 자신을 비웃는 창녀들의 목소리

 거듭 모욕받는 자들의 어두운 원한

 웃을 일이 없는 고독한 사람들

 흐느끼는 아이들이 탄식하는 소리를 듣는다.

 남몰래 유혹당한 사람들의 무기력한 외침을

 이 모든 고통을 지닌 사람들의 음성을 그는 듣는다.

 버림받은 자, 무감각한 인간, 조롱받는 자,

 거리마다 매일 존재하면서

 칭송도 받지 못하는 순교자들,

 그는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들이

 원초의 강력한 멜로디를 이루면서

 열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그리고 그는 본다.

 오직 고통만이 신께로 날아오르는 것임을.

 다른 사람들은 납과도 같은 행복에 묶여

 이 지상에 무겁게 잡혀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저 위에서는

 지상의 고통으로부터

 피어오르는 코러스들의 홍수로

 빛이 끝없이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는 안다. 신께서는

 그 모든 고통의 소리를 들으시리라는 것을.

 자비로움이 그의 하늘을 울리리라는 것을!


 신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심판하지 않으신다.

 무한한 동정심이

 영원한 빛으로 신의 회당을 불태운다.

 묵시록의 기사들이 흩어져 나간다.

 죽음 속에서 삶을 겪은 자에게

 고통은 기쁨이 되고 행복은 괴로움이 된다.

 벌써 불 붙은 천사 하나가

 땅바닥에서 일어서서

 고통 속에 태어나는 성스러운 사랑의

 빛으로 깊고도 빛나는 모습으로

 그의 두려워하는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온다.


 그러자 그는

 쓰러지듯 무릎 꿇는다.

 갑자기 그는 진정으로 무한한

 고통 속에 있는 세상 전체를 느낀다.

 그의 몸이 떨린다.

 하얀 거품이 그의 이 사이로 뿜어 나오고

 경련이 그의 모습을 일그러뜨린다.

 그러나 눈물이

 행복하게 그의 죽음이 복장을 적신다.

 죽음의 쓰디쓴 입술을 건드리고 난 지금

 비로소 그의 가슴은

 삶의 달콤함을 느낀다.

 그의 혼은 고문과 상처를 향해 타오르고,

 이제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 1초 동안 그는

 천 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서 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저 불타오르는 죽음의 키스를 받은 뒤로

 그분처럼 자신도 오직 고통으로 인해

 삶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이제 분명히 안다.

 

 병사들은 그를 기둥에서 풀었다.

 창백하게

 그의 얼굴은 불이 꺼져 버린 듯하다.

 냉혹하게

 그들은 그를 행렬 속에 밀어넣는다.

 그의 눈길은

 낯설고, 완전히 내면으로만 향해 있다.

 그의 떨리는 입술 주위에

 카라마조프의 노란 웃음이 매달려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다가 처형당하기 직전에 풀려난 자신의 경험을 여러 작품에서 회고하고 있다. 가난하고 모욕당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과 고통을 통한 구원이라는 생각은 그의 작품들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