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 찾기

톨스토이의 마지막 절실한 소원-그는 왜 집을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두꺼비네 맹꽁이 2008. 1. 19. 13:21
 

 <어둠 속에 빛이 비친다> 그 후

 1910년 10월 말. 톨스토이의 미완성 드라마에 부치는 에필로그

 

 

 1890년, 레오 톨스토이는 희곡으로 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은 뒷날 그의 유고집에서 <그리고 어둠 속에 빛이 비친다>는 제목의 미완성 희곡으로 출판되고 공연되었다. 이 미완성 드라마는 (이미 첫 장면이 벌써 그것이 미완성임을 드러낸다) 다름 아니라 자기 가정의 비극을 가장 친근하게 묘사한 것으로서, 몰래 도망치려고 계획한 것에 대한 자기 변명임과 동시에 아내에게 전하는 사죄의 말들이다. 그러니까 극단적인 영혼의 분열 한가운데서 얻어진 도덕적 균형이 만들어낸 작품인 것이다.

 톨스토이는 사린제브(Nichkolai Michelajiewitsch Sarynzew)의 모습에 자기 자신을 투사했다. 그러므로 이 비극을 허구로 보기는 어렵다. 아니, 의심의 여지없이 레오 톨스토이는 자기 삶의 해결책을 찾아볼 생각으로 이 작품을 썼다. 그러나 이 작품이 씌어진 1890년으로부터 10년이나 지난 뒤인 1900년에도 톨스토이는 어떠한 결정이나 종결을 맺을 용기도 적당한 형식도 삶에서는 물론이고 작품에서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이러한 체념으로 인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니까 작품은 주인공이 신을 향해 손을 뻗은 채, 신께서 자기 곁에 머물러 아내와의 불화를 끝내주시기만을 기도하면서 갈피를 못 잡는 상태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비극의 마지막 장을 톨스토이는 뒷날에도 쓰지 못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그가 그 마지막 장을 ‘살았다’는 것이다. 1910년 10월의 마지막 며칠 동안에, 25년간의 방황은 마침내 끝이 났고 위기는 해방으로 바뀌었다. 톨스토이는 몇 번이나 무시무시하고도 극적인 갈등을 보인 뒤에 자기 삶에서 도망쳤다. 그것도 자기 삶의 운명에다가 완전한 형식과 축복을 베풀어 줄 위대하고 모범적인 죽음을 향해 도망쳤다.

 글로 쓰는 대신 스스로 살아 버린 이 비극의 마지막 장을 이미 씌어진 미완성 작품에 덧붙이는 일이 내게는 퍽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여기서 나는 가능한 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게, 그리고 사실과 기록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고서 감히 이 일을 하고자 한다. 나는 레오 톨스토이의 고백에 내멋대로 보충을 하려는 의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작품에 합류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작품에 약간의 도움을 주고자 할 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시도하는 것이 톨스토이의 작품을 완성하려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다만 미완성의 작품과 해결되지 않은 갈등에 하나의 독립적인 에필로그를 덧붙이려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끝나지 않은 비극에 하나의 확실한 종결을 주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에필로그의 의미이며, 나의 존경심에 찬 노력은 그것으로 만족한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무대 공연을 위해서 강조하는 점은, 이 에필로그는(그리고 어둠 속에 빛이 비친다)에서보다 시간적으로 16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레오 톨스토이로 분장한 배우의 모습에 분명하게 드러나 보여야 한다. 그의 생애 마지막 몇 년간의 아름다운 초상화들이 참조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샤마르디노 수도원에서 자기 누이 곁에 있는 모습의 초상화와 임종의 침상에서 찍힌 사진이 참조되어야 한다. 그리고 서재는 그 감동적인 단순한 모습 그대로 역사에 충실하게 재연되어야 할 것이다. 장면으로 말하자면 나는 이 에필로그를(여기서 톨스토이는 사린제브라는 가명 뒤에 숨지 않고 직접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 빛이 비친다>의 4막이 끝난 다음, 긴 휴식 시간을 두었다가 그 뒤에 덧붙이고 싶다. 독자적으로 이것만 공연하는 것은 내 의도가 아니다.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인물들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83세)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톨스토이;톨스토이의 아내

 알렉산드라 류보브나(사샤라고 불림);톨스토이의 딸

 블라디미르 게오르게비치;비서

 두산 페트로비치;톨스토이의 주치의이자 친구

 이반 이비노비치 오솔링;아스타포보 역장

 사릴 그레고로비치;이스타포보 결찰서장

 학생 1

 학생 2

 여행자 세 사람


 첫 두 장면은 1910년 10월 마지막 며칠 동안 야스나야 폴리아나에 있는 그의 서재. 마지막 장면은 1910년 10월 31일 아스타포보 역의 대합실.


 제1장

 1910년 10월 말 야스나야 폴리아나

 톨스토이의 서재. 단순하고 장식이 없다. 잘 알려진 그림 그대로의 모습이다.


 비서가 두 명의 학생을 안내해 들어온다. 그들은 러시아식으로 깃을 높이 올린 검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둘 다 젊고 날카로운 얼굴로 소심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불손한 태도로 움직인다.


 비서; 잠깐 앉으시죠. 선생님은 여러분을 오래 기다리게 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분의 나이를 생각해 달라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토론하기를 너무 좋아하셔서 때로는 피곤하다는 사실도 잊어 버리시거든요.

 학생 1; 우린 선생님께 여쭤볼 게 별로 없어요. 질문이라곤 한 가지뿐이죠. 물론 우리에게나 그분께나 결정적인 질문이지만, 잠깐만 있겠다고 약속하겠어요. 우리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해도 된다면 말이에요.

 비서; 물론 자유롭게 이야기해도 됩니다. 덜 형식적일수록 더욱 좋죠. 무엇보다도 전하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질색하신답니다.

 학생 2; 그 점만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적어도 그 점만은 말입니다.

 비서; 벌써 계단을 올라오시는군요.


 톨스토이가 들어선다. 약간 휘청거리는 걸음걸이지만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민첩하고 신경질적이다. 대화하는 동안 그는 빨리 자신의 생각을 내뱉고자 하는 초조감에서 연필을 돌리거나 종이를 조각조각 찢곤 한다. 그는 서둘러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차례로 손을 내밀어 악수하면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잠시 동안이지만 날카로운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리고 나서 맞은편 안락의자에 앉는다.


 토스토이; 당신들이 위원회가 내게 보낸 그 두 사람이군요. 그렇지 않은가요......(그는 편지를 뒤적인다.) 여러분의 이름을 잊어서 미안합니다.

 학생1 ; 이름 따위는 기억하지 못하셔도 괜찮습니다. 우린 그저 10만 명의 대표로서 선생님을 뵈러온 것이니까요.

 톨스토이 ‘ (그를 날카롭게 바라보면서) 내게 별다른 질문이라도 있나요?

 학생1 ; 한 가지 있습니다.

 톨스토이 ; (학생 2에게) 그리고 당신은?

 학생2 ; 마찬가집니다. 우린 모두 한 가지 질문뿐입니다. 선생님, 우리 러시아 혁명 청년 모두는 단 한 가지만을 궁금해합니다. 다른 것은 없어요. 선생님은 어째서 혁명에 동참하지 않으십니까?

 톨스토이 ; (극히 평온하게) 그 사이 출간된 책과 편지들에서 이미 분명하게 밝혔다고 생각하는데, 당신들이 개별적으로 내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소만.

 학생1 ; (흥분해서) 우리가 선생님 책을 읽었느냐고요? 별난 질문도 다 하십니다. 읽었다는 말만으론 오히려 부족합니다. 우린 어린 시절부터 선생님의 책대로 살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자라는 동안 선생님은 우리 안의 심성을 일깨우셨죠. 선생님이 아니고서 누가, 토지란 모든 사람의 것이고 또 지금처럼 토지를 분배 세습하는 것이 부당한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었겠습니까? 선생님의 책들, 오직 선생님만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어요. 국가나 교회 혹은 한 지배자가, 다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수가 다수에게 불의를 행하는 것을 보장해주고 있다면, 우리들 다수는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요. 오직 선생님만이 이 잘못된 질서가 마침내 파괴될 때까지 목숨바쳐 싸워야 한다는 걸 일깨워주셨는걸요.

 톨스토이 ; (말을 끊으며 말한다) 하지만 폭력을 통해서는 아니네.

 학생1 ; (거침없이 동시에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언어로 말하게 된 이후로 아무도 선생님만큼 신뢰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가 이 불의를 없앨까 하고 물으면 우린 서로 대답했죠. 그분이! 누가 떨쳐 일어나 이 수치스러움을 몰아낼까 하고 물으면 우린 말했죠. 그 사람, 레오 톨스토이! 하고 말이죠. 우린 선생님의 학생이자 종이었어요. 그 당시 선생님의 손짓 한 번이면 우린 목숨을 바쳤을 거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이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면 전 아마도 성자 앞에서 하듯이 선생님 앞에 무릎을 꿇었겠지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습니다. 수십만의 러시아 청년들에게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우리 모두는 탄식합니다. 그 이후로 선생님은 우리에게서 멀어지셨고 이젠 거의 우리의 적이 되다시피하셨죠.

 톨스토이 ; (부드럽게) 내가 당신들과 연결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오?

 학생 1; 주제넘게 선생님을 가르치려 드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선생님을 우리 러시아 청년들로부터 멀어지게 했는지는 선생님 자신이 더 잘 아실 테니까요.

 학생 2 ; 좋습니다. 그걸 말해서 안 될 이유도 없으니까요. 예의를 갖추기에는 사안이 너무 중대합니다. 선생님도 이제는 눈을 뜨셔야 합니다. 현 정부가 우리 국민에게 행하는 무시무시한 범죄를 더 이상 그렇게 뜨뜻미지근하게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책상에서 일어나 분명하고도 솔직하게 혁명의 편에 서야 합니다. 선생님, 그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우리 운동을 탄압하고 있는지 아시죠? 오늘날 선생님의 정원에 있는 풀잎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요.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선생님은 이 모든 것을 보시면서도, 어떻게 영자 신문에다가 인간 생명의 성스러움에 대한 글이나 기고하냐고 말이죠. 하지만, 선생님도 알고 계시죠? 말이란 건, 글이란 건 지금 같은 유혈 테러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걸요. 지금은 완전히 뒤집는 것, 오직 혁명만이 유용할 뿐이란 걸 선생님도 우리만큼이나 잘 아실 겁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 한 마디면 혁명이 필요로 하는 군대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도 말이죠. 선생님은 우리를 혁명가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생님의 시간이 무르익었는데 여전히 조심스럽게 등을 돌리고 있다는 건, 그건 정부가 행하는 폭력을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톨스토이 ; 나는 결코 폭력을 인정한 적이 없어. 결코! 30년 전부터 나는 오직 모든 권력자의 범죄에 맞서 싸우는 데만 전념해 왔어. 그래서 내 일도 집어치웠고, 30년 전부터, 자네들이 아직 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이야. 나는 말이지. 자네들보다 더 과격하게 이 사회 상황의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완전한 새 질서를 요구해 왔어.

 학생 2 ; (말을 끊으며) 그래서요? 그래서 선생님은 무엇을 얻어낸 겁니까? 30년 동안 무엇을 얻었죠? 선생님의 메시지를 실천한 농노들이 얻은 것이라고는 채찍질과 가슴에 박힌 여섯 발의 총탄뿐입니다. 선생님의 책과 팜플렛에 담긴 그 온화한 촉구들이 러시아에 무엇을 가져온 겁니까? 무엇이 더 좋아진 겁니까? 선생님이 국민을 참을성 있게 만들고 그들에게 천년 왕국을 기다리라고 말해서 오히려 압제자들만 도와준 꼴이 되었다는 걸 모르십니까? 안 됩니다. 선생님, 이 오만방자한 종족에게는 사랑의 이름으로 탄원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선생님이 천사의 혀로 말한다 해도 말입니다. 이 차르 족속은 선생님의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단 1루블도 호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우리가 그네들 목덜미에 주먹을 들이대기 전에는 단 1인치도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국민은 선생님의 형제 사랑을 충분히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행동할 때입니다.

 톨스토이 ; (상당히 격렬하게) 나도 알고 있네. 자네들의 선언문에 심지어는 ‘성스런 행동’이라고 씌어 있다는 것도 알아.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성스런 행동이란 말이지. 하지만 난 증오는 모르네. 알고 싶지도 않아. 국민에게 죄를 짓고 있는 저들에 대해서도 증오는 모르네. 악행을 하는 자는 악행을 당하는 자보다 영혼으로 보면 더욱 불행한 법이야. 나는 그런 자들을 불쌍하게 여길 뿐, 미워하지는 않아.

 학생 1 ; (화가 나서) 하지만 저는 인류에게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모두 미워요. 피흘리는 야수처럼 가차없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미워합니다. 아무리 선생님이라고 해도 제게 이 범죄자들에 대해 동정심을 가지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톨스토이 ; 범죄자도 역시 내 형제라네.

 학생 1 ; 그 사람이 내 형제고 내 어머니의 자식이라고 해도, 그가 우리들에게 고통을 가져온다면 나는 그를 미친 개처럼 쓰러뜨리고 말 겁니다. 아니요. 동정심 없는 자들에게 동정을 베풀 수는 없어요. 이 러시아 땅에 차르와 귀족들의 시체가 묻힐 때까지 러시아에 평화란 없을 겁니다. 우리가 억지로 만들어내기 전에는 이 땅에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질서란 없을 겁니다.

 톨스토이 ; 어떤 도덕 질서도 폭력을 통해 억지로 만들어질 수는 없어. 폭력이란 불가피하게 또다른 폭력을 낳기 때문이야. 자네들이 무기를 잡게 되면 자네들은 곧바로 새로운 독재를 만들어낼 걸세. 독재를 부수기는커녕 그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말 거야.

 학생 1 ; 하지만 권력을 파괴하는 것밖에는 권력자에게 대항할 수단이 없지 않습니까?
톨스토이 ; 맞는 말이야. 하지만 인간은 일단 한 번 사용해 본 수단은 반드시 나쁘게도 사용하는 법이지. 진정한 강인함은 폭력으로 폭력에 대항하지 않는다네. 오히려 양보를 통해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지, 복음서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학생 2 ; (말을 끊으며) 아, 그 복음서 이야기라면 그만두십시오. 오랫동안 신부들은 그놈의 복음서로 술을 빚어 민중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렸죠. 하지만 그건 2천 년 전에나 맞을 법한 말입니다. 아니, 그 당시에도 실제로는 아무 도움이 못 되었죠.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지금처럼 비참함과 피로 가득 차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요. 선생님. 착취당하는 자와 착취하는 자, 하인과 주인 사이에 벌어진 틈을 낡은 성경 구절로 메울 수는 없습니다. 신앙심 깊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 수백, 수천  명이 지금 시베리아 유형지나 감옥에 있습니다. 내일이면 수천 수만으로 불어나겠죠.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정말로 이 수백만의 죄 없는 사람들이 한 줌의 죄 많은 자들 때문에 계속 고통받아야 하는 겁니까?

 톨스토이 ; (정신을 집중하면서) 또다시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그들이 고통받는 편이 더 낫지. 불의에 대항하는 데 죄 없는 자의 고통만큼 효과적인 좋은 방법은 없으니까.

 학생 2 ; (거칠게) 지금, 고통을 좋다고 하시는 겁니까? 끝도 없는, 천 년이나 된 러시아 민중의 고통이 좋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감옥에 한 번 가 보세요. 선생님, 거기서 채찍을 맞은 자들에게 물어보세요. 우리 도시와 마을의 굶주린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고통이 정말로 좋은지 말입니다.

 톨스토이 ; (화가 나서) 자네들의 폭력보다야 물론 낫고 말고. 자네들의 폭탄과 권총이 정말로 이 세상에서 악을 궁극적으로 몰아낼 거라고 믿나? 아니야. 그건 자네들 내면에서 악이 작용하는 것일 뿐이야. 그리고 반복하네만, 신념을 위해 살인하는 것보다는 신념을 위해 고통받는 쪽이 백 배는 더 나은 것일세.

 학생 1 ; (똑같이 화가 나서) 좋습니다. 고통받는 것이 그렇게 좋다면, 어째서 선생님 자신은 고통 속에 있지 않은 겁니까.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수난받기를 권하면서 어째서 선생님 자신은 따뜻한 집 안에 앉아서 은그릇에 식사를 하는 거죠?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선생님의 농부들은 누더기를 걸친 채 오두막에서 굶주리며 떨고 있더군요. 어째서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에 고문받는 농도들 대신에 선생님 자신이 채찍질당하지 않는 겁니까. 어째서 이 백작의 저택을 떠나서 길거리로 나가 몸소 비바람과 서리를 맞으며 그 소중한 가난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 어째서 선생님 자신의 가르침을 실천하지는 않고 언제나 말만 하는 겁니까. 어째서 손수 그러한 예를 보여주지 않는 거죠?

 톨스토이 ; (움츠러들어 있다. 비서가 뛰어들어와 학생들을 꾸짖으려고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새 마음을 가다듬고 부드럽게 비서를 물리친다) 내버려 둬요. 이 젊은이가 내 양심에 좋은 질문을 던졌소. 좋은, 아주 훌륭한, 정말로 꼭 필요한 질문이었어요. 그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려고 애써 보겠소. (그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온다. 망설이다가 용기를 낸다. 그의 음성은 껄끄럽고 막이 덮인 듯하다) 내가 어째서 내 가르침과 주장에 걸맞게 직접 고통을 감당하지 않는지를 내게 묻는 건가. 크나큰 부끄러움을 안고 답하겠네. 내가 지금까지 나의 가장 신성한 의무로부터 벗어나 있었다면 그것은......그러니까 그 이유는...내가......너무 비겁하고 너무 약해서 혹은 정직하지 못해서일세. 나는 천박하고 무가치하고 죄 많은 인간이라네. 하나님이 오늘까지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을 할 힘에 내게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야. 낯선 젊은이여, 자네는 내 양심에 대고 무시무시한 말을 한 걸세. 해야 할 일의 천분의 1도 하지 않았다는 걸 부끄럽지만 나도 알고 있다네. 고백하건대, 벌써 오래 전에 이 집을, 내 스스로 죄라고 여기는 이 비참한 삶의 방식을 떠났어야 했어. 자네가 말한 대로 순례자가 되어 거리로 나섰어야 했어. 영혼 가장 깊숙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나 자신의 비참함 앞에 고개를 숙이네. (학생들은 당황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한 순간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나서 톨스토이는 더 낮은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그런데도 나는 고통받고 있는지도 모르지......어쩌면 내가 사람들 앞에서 내 말을 실천할 만큼 강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말이지. 어쩌면 가장 무시무시한 신체의 고문을 당하는 것보다도 더 심하게, 여기서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지도 몰라. 어쩌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내게 지워주신 십자가일지도 모르네. 발에 족쇄를 찬 채 감옥에 있는 것보다도 더욱 괴로운 심정으로 이 집에 있도록 말이야. 그러나 자네가 옳아. 이 고통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그것은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니 말이야. 그리고 심지어는 이런 고통을 자랑삼을 정도로 오만한 사람이니 말이지.

 학생1 ; (부끄러워하며)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선생님. 그만 열이 올라 개인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톨스토이 ; 아니, 아니, 그 반대야. 정말로 감사하네. 양심을 뒤흔들어 놓는 사람은 비록 주먹질을 하는 경우라도 역시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야. (침묵, 톨스토이 다시 낮은 음성으로) 두 사람은 아직도 내게 질문이 있는가?

 학생1 ;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질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편에 서지 않는 것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 인류에 불행한 일입니다. 누구도 이 변혁을, 이 혁명을 선생님보다 더 잘 후원해줄 수는 없을 테니까요. 제 느낌으로 이 혁명은 이 땅의 그 무엇보다도 끔찍하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이끌어 가돌고 운명지워진 사람들은 매우 강인한 사람들일 겁니다. 결정한 것을 가차없이 실천하는 사람들이겠지요. 온화함이란 조금도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선생님이 우리들 맨 앞에 서 주신다면 수백만의 사람들이 선생님의 뒤를 따를 테고, 희생 또한 적을 겁니다.

 톨스토이 ; 그리고 단 하나뿐인 목숨을 희생시켜야 할 테지. 나는 내 양심에 걸고 그런 죽음에 책임을 질 수 없다네.

 아래층에서 종소리가 울려온다.

 비서 ; (대화를 중단시키려고 톨스토이에게) 점심 식사 종입니다.

 톨스토이 ; (괴로운 듯이) 그렇군. 먹고, 지껄이고, 먹고, 자고, 쉬고, 지껄이고 그렇게 우린 무료한 삶을 살지. 다른 사람들은 그 동안 일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말이야. (젊은 사람들에게로 다시 몸을 돌린다.)

 학생2 ; 그렇다면 우리 친구들에게 선생님의 거부 의사를 가지고 돌아가야겠군요? 격려하는 말씀 한 마디라도 안 해 주시렵니까?

 톨스토이 ; (날카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서) 친구들에게 내 이름으로 전해주게. 러시아의 젊은이이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대들이 그토록 강하게 형제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ㄱ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그대들의 목숨을 바치려고 한다는 것에 대해, (그의 음성은 강하고 냉정해진다.)그러나 더 이상은 그대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대들이 모든 인간에 대해 인간적인 사랑과형제로서의 사랑을 거부하는 순간, 나는 그대들과 함께 하기를 거부한다.


 학생들 침묵하낟. 잠시 후 학생 2가 결심한 듯 앞으로 나서서 냉정하게 말한다.


 학생2 ; 우리를 만나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해주신 점도 감사드리구요. 그러나 다시는 마주할 수 없을 것 같군요. 그러니 저같이 이름 없는 존재가 이별에 앞서 솔직한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선생님, 인간 관계가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개선될 수 있다고 믿으신다면 잘못 생각하신 겁니다. 그런 것은 오직 부자와 걱정 없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굶주리며 평생을 주인의 지배 아래서 고통받아온 사람들은 기독교의 하늘에서 이 형제 사랑이 내려와주기를 기다리느라 이미 지쳐 버렸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주먹을 믿을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죽음을 앞둔 이 저녁에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만간 세계는 피에 질식할 것이라고요. 인류는 지배자뿐 아니라 그의 어린 자녀들까지도 때려죽이고 토막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저들의 나쁜 점을 더 이상 아무것도 갖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런 일이 선생님께는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어쨌든 선생님 자신의 잘못을 목격하게 되실 겁니다. 선생님 자신을 위해 이것을 목격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빌겠습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에게 평화로운 죽음을 내리시길!


 톨스토이는 뒤로 물러나 눈을 빛내는 이 젊은이의 열정에 굉장히 놀라워한다. 그리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젊은이를 향해 나아가 소박한 태도로 말한다.


 톨스토이 ; 특히 자네의 마지막 말이 고맙구먼. 내가 30년 전부터 갈구해 온 것을 나를 위해 빌어주었어.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과 평화를 얻은 죽음 말이지.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 나간다. 톨스토이는 멀어져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흥분해서 방 안을 이리저리 거닌다. 열정에 찬 목소리로 비서에서 말한다.) 정말 놀라운 젊은이들이야. 용감하고 자부심에 넘치고 강해. 이 젊은 러시아 사람들 말이지. 벌써 60년 전에 세바스토폴에도 그런 젊은이들이 있었어. 아주 똑같애. 그들은 뻔뻔스런 눈길로 자청해서 죽음에 맞섰지. 어떤 위험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어.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서였어. 자기들의 생명, 그 놀라운 젊은 생명을 공허하고 내용 없는 말을 위해서, 진실 없는 이념을 위해서, 그저 헌신한다는 기쁨에 넘쳐서 미소 지으며 던졌던 거야. 마치 성스러운 일이나 하듯 열정과 힘에 넘쳐서 증오와 살인에 자신을 바친 거지. 그런데도 그들은 내게 좋은 일을 해주었어. 이 두 젊은이는 나를 흔들어 놓았어. 정말로 그들이 옳아. 나도 이젠 내 허약함에서 몸을 일으켜 실천에 나서야 해. 죽음까지는 두 걸음밖에 남아 있지 않은데도 난 여전히 망설이기만 했어. 정말로, 올바른 것은 오직 젊은이들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법이야. 젊은이들로부터만 말이지.

 

 갑자기 문이 열린다. 흥분한 톨스토이 백작부인이 신경질적으로 들어선다. 움직음은 불안정하고 눈길은 계속해서 하나의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겨다닌다. 말하는 동안에도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음을, 내면이 심각한 불안으로 인해 쇠약해졌음을 볼 수가 있다. 비서는 마치 공기이기라도 한 듯 그녀의 눈길에서 비껴나 있다. 그녀는 오직 남편을 향해서만 말을 한다. 딸 사샤가 재빨리 그녀를 따라 들어선다. 사샤는 어머니를 감시하기 위해 뒤따라온 듯한 인상을 풍기낟.

 

 백작부인 ; 벌써 점심 식사를 알리는 종도 울렸고, 30분 전부터는 <데일리 텔리그라프> 신문 기자가 사형 선고에 반대하는 당신의 기고문 때문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따위 젊은 애들 때문에 그 사람을 그냥 세워두고 계시잖아요. 버르장머리 없는 뻔뻔스런 놈들 같으니. 아래층에서 하인이 백작을 만났느냐고 물어 보니까 그 중 한 녀석 말이 글쎄, “아니, 우린 백작은 만나지 않았소, 레오 톨스토이가 우리를 맞아주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아니겠어요. 당신 어쩌면 세상을 꼭 자기들 머리통처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그런 건방진 애들이나 상대하세요? (그녀는 불안한 태도로 방 안을 둘러본다) 뎌기 어질러진 꼴 좀 보세요. 책은 바닥에 굴러다니고, 모든 것이 제멋대로 먼지 구덩이에 파묻혀 있으니, 정말이지 괜찮은 손님이라도 온다면 창피한 일이지 뭐예요. (그녀는 안락의자 쪽으로 다가가서 그것을 붙잡는다) 이 천은 또 뭔가요? 정말이지 너덜너덜하군요. 부끄러운 일이지 뭐야. 아니 이건 도무지 꼴불견이에요. 다행히도 내일 툴라에서 가구 수리공이 돈다니까 의자를 손보게 하세요. (아무도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불안하게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좋아요. 그럼 갑시다. 그 사람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순 없어요.

 톨스토이 ; (갑자기 창백해져 불안해진 태도로) 내 곧 가겠소. 하지만 여기......좀 정돈할 일이 있어서......사샤가 좀 도와줄 수 있겠지. 그 사시 당신은 그 사람을 좀 상대해주고, 내가 곧 간다고 전해주구려. (백작부인은 한 번 더 가물거리는 눈길을 방 안에 던지고는 나간다. 그녀가 방을 나서자마자 톨스토이는 급히 달려가 문을 잠근다.)

 사샤 ; (그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서) 무슨 일이에요?

 톨스토이 ; (흥분으로 인해 가슴을 손으로 누르고 더듬거린다.) 내일 가구수리공이라고? 맙소사. 아직은 시간이 있지. 맙소사.

 사샤 ; 대체 무슨 일?

 톨스토이 ; (흥분해서) 칼 좀, 빨리 칼이나 가위 좀......(비서가 이상하다는 눈길로 책상 서럽에서 종이 자른 가위를 꺼내 그에게 건넨다. 톨스토이는 두려운 눈길로 잠긴 문을 자주 쳐다보면서 신경질적으로 안락의자의 갈라진 틈을 가위로 넓힌다. 틈 사이로 비어져 나오는 말털 속으로 두 손을 불안하게 집어넣더니, 봉인된 편지를 끄집어낸다.) 여기 있다. 그렇지 않니? 이건 웃기는 일이야. 게다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 마치 형편 없는 프랑스 통속 소설 같잖나. 끝없이 창피한 일이지. 그런데 내가, 똑똑한 제 정신으로, 그것도 내 집에서 여든세 살이나 되었으면서 가장 중요한 서류를 이렇게 감추어 두어야 하다니. 내 것은 무엇이든 뒤지고, 얹나 내 뒤를 캐고, 말 한 마디, 비밀까지 염탐을 해대니 말이다. 아, 이 집에서 내 인생이 이 무슨 지옥이며 이 무슨 거짓인가. (그는 차차 안정을 찾더니 겉봉을 뜯어 편지를 꺼낸다. 사샤를 보며) 13년 전에 이 편지를 썼단다. 그 때 네 엄마를, 지옥 같은 이 집을 떠났어야 하는 건데, 이건 네 엄마에게 보내는 작별의 편지였다. 용기가 없어서 결국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평쳐서 혼잣말로 읽는다.)

 “16년 전부터 계속된 이 삶을 지속하는 일이 내게는 가능하지가 않아요. 한편으로 내가 당신들과 싸우고 계속 당신들을 자극하고 있는 이 삶 말이오. 그래서 나는 이미 오래 전에 했어야 할 일을 하려고 해요. 그러니까, 도망치는 일 말이오. 내가 대놓고 나가겠다고 한다면 아주 괴로운 일이 될 거요. 어쩌면 나는 약해져서 이 결심을 실행에 옮기지 못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날 용서해주시오. 내 행동이 당신들에게 고통을 줄 경우에, 특히 소냐, 선량한 태도로 나를 당신 마음에서 내보내주시오. 나를 찾지 마시오. 나 때문에 한탄하지도 그렇다고 나를 비난하지도 말아주시오.”

 (무거운 숨을 내쉬며) 아, 벌써 13년이나 지났구나. 13년 동안이나 나는 계속 고통받아 왔다. 그런데도 여기 있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직도 그대로 현실이고 내 살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비겁하고 약하다. 나는 아직도 도망치지를 못했고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다리고만 있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야. 모든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나는 언제나 잘못 행동하고 있다. 언제나 나는 너무나 약한 것이지. 마치 선생님 앞에서 더러운 책을 감추는 꼬마애처럼 이 편지를 여기다 이렇게 감추어 두었다. 내 저작권을 전 인류에게 선물해 달라고 네 엄마에게 간청하는 유언장은 엄마의 손에 들어갔지. 내 양심의 평화 대신에 집안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말이야.

  비서 ; 그렇다면, 선생님. 제게도 질문을 허락해주신다면요. 그러니까 모르는 사이에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선생님 생각으론......만일, 만일에 말입니다. 하나님이 선생님을 부르신다면, 저작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생님의 이 마지막 절실한 소원이 정말로 실현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톨스토이 ; (깜짝 놀라서) 물론이지. 그러니까, (불안한 태도로) 아니야. 나도 모르겠소. 네 생각은 어떠냐, 사샤?

 사샤는 고개를 돌리고 침묵한다.

 톨스토이 ; 맙소사. 그 점은 미처 생각지 못했구나. 그렇잖으면, 아니지, 아직도, 아직도 나는 완전히 진실하지 못한 거야. 아니다. 난 그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난 다시금 회피한 거야. 언제나 아주 분명하고 똑바른 결정을 회피해 온 것처럼 말이지. (그는 날카로운 눈길로 비서를 본다.) 아니, 난 알고 있어. 분명히 알고 있네. 아내와 아들들은 내 마지막 의지를 존중하지 않을 거야. 지금 그들이 내 믿음과 영혼의 의무를 거의 존중하지 않듯이 말이지. 그들은 내 작품으로 폭리를 취할 테지.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도 사람들 앞에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말거야. (그는 확고한 동작을 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돼. 안 되고말고. 그래도 한 번은 분명해야지. 오늘 그 학생, 진실되고 정직한 그 젊은이가 무어라고 했더라? 맞아, 세상이 내 행동을 기다린다고, 정직하고 명료하고 순수하고 분명한 결정을 말이지. 그래, 바로 그거야. 내 나이 이제 여든셋이야. 죽음을 앞둔 나이지. 그러니 더 이상 눈을 감아서는 안 돼. 죽음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간단하게 결정을 해야겠지. 그래, 이 낯선 사람들이 내게 경고를 해준 거야. 행동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영혼의 비겁함을 감추는 것일 뿐이야. 분명하고 진실되어야 해. 나는 이젠 그렇게 되겠어. 지금 나는 내 인생의 12시. 여든셋의 나이지만 말이야. (그는 비서와 딸에게로 향한다.) 사샤, 그리고 블라디미르 게오르게비치, 내일 당장 유언장을 작성하겠네.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명료하고 확고하게. 구속력이 있도록 말이야. 내 모든 저술의 열매를, 거기서 불어난 그 모든 때묻은 돈을 전 인류에게 선물하겠노라고 말이지. 내 양심이 모든 사람을 위해 고통 속에서 말하고 쓴 것들을 놓고 그 어떤 거래도 있어서는 안 돼. 게오르게비치, 내일 오전 중에 여기로 오시오. 그리고 다른 증인도 데려와요.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어쩌면 죽음이 내 손을 돋 잡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사샤 ; 잠깐만요, 아버지. 그러지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엄마가 우리 넷이 여기 있는 걸 보게 되면 일이 어렵게 될까봐 두려워서 그러는 거예요. 얼마는 금방 의심을 하실 거고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의 생각을 다시 흔들어 놓을지도 몰라요.

 톨스토이 ; (생각에 잠겨서) 네 말이 맞다. 안 돼. 여기 이 집에선 어떤 순수한 일도, 올바른 일도 해낼 수가 없어. 여기선 삶 전체가 거짓이 되고 말지. (비서에게) 그렇다면 내일 오전 11시에 그루몬트 숲의 로겐펠트 뒤에 있는 왼쪽 큰 나무에서 나를 만납시다. 나는 보통 때처럼 산책을 가는 듯 행동하겠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둬요. 하나남이 마침내 이 마지막 사슬을 풀 단호함을 내게 주시기를 빕니다.


 점심 식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더욱 격렬하게 울린다.


 비서 ; 하지만 지금은 백작부인께서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십시오. 그렇잖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맙니다.

 톨스토이 ; (무겁게 한숨을 쉬면서) 끔찍한 일이야. 언제나 거짓으로 위장하고, 언제나 마음을 감추어야 하다니. 세상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 앞에서 참되고자 하면서도 아내와 자식들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니. 아니야,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거야.

 사샤 ; (놀라서) 어머니!


 비서는 재빨리 문의 자물쇠를 돌려서 연다. 톨스토이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책상 쪽으로 가서 입구를 등지고 선다.


 톨스토이 ; (신음하면서) 이 집안의 거짓이 나를 오염시키는구나. 아, 단 한 번만이라도 참될 수 있다면, 적어도 죽음을 앞두고서는 참될 수가 있다면!

 백작부인 ; (서둘러 들어온다) 어째서 안 오시는 거죠? 언제나 이렇게 시간을 잡아먹는군요.

 톨스토이 ; (그녀 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의 얼굴은 다시 완전히 평온해져 있다. 그는 천천히, 부인 아닌 다른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어조로 말한다.) 그래, 당신이 옳아요. 나는 언제나 무슨 일을 하거나 시간이 오래 걸리지.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그래도 중요해. 제때에 올바른 일을 할 시간은 남아 있다는 사실 말이오.


제2장

 같은 방. 다음 날 늦은 밤.

 비서 ;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드시는 게 좋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너무 긴 시간 동안 흥분한 채로 지내셔서 몹시 피곤하실 겁니다.

 톨스토이 ; 아니, 전혀 피곤하지 않다네. 오직 한 가지만이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법이야. 동요와 불안이지. 모든 행동은 해방을 가져다준다네. 가장 나쁜 일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방에서 오락가락한다.) 내가 오늘 제대로 행동했는지 모르겠어. 우선 내 양심에 물어야겠군. 내 작품을 모든 사람에게 돌려주었다는 것이 내 영혼을 가볍게 해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유언장을 몰래 작성한 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사람들 앞에서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서 작성했어야 하는 건데, 어쩌면 진실을 위해 자유 의사로 행했어야 할 일을 너무 품위 없이 한 건 아닌지. 하지만 다행이야. 어쨌든 그 일을 했으니, 삶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것이고 죽음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간 것이지.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일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네. 마지막이 다가오면 제때에 짐승처럼 기어서 숲 속으로 가는 일이지. 이 집에서는 삶처럼 죽음도 참되지 못할 테니까. 여든세 살 나이에도 여전히 내 자신을 지상에서 떼어낼 힘이 없다니. 어쩌면 난 적절한 순간을 놓쳐 버렸는지도 몰라.

 비서 ; 누가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걸 안다면 모두가 좋게요.

 톨스토이 ; 아니, 게오르게비치. 그건 전혀 좋은 게 아니라네. 옛 이야기를 모르나. 어떤 농부가 내게 해준 얘긴데, 그리스도가 인간에게서 죽을 때를 아는 능력을 빼앗아 간 얘기 말이야. 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예전에는 누구나 자기가 언제 죽을지 미리 알았다네. 한 번은 그리스도가 지상으로 내려와서 많은 농부들이 밭을 갈지 않고 죄인처럼 살고 있는 것을 보았지. 그리스도는 그들 중 한 사람을 불러서 게으름을 야단치셨어. 그러나 그 농부는 이렇게 투덜거렸다는 거야. 가을 추수도 볼 수 없는데 대체 누구를 위해서 밭에다가 씨를 뿌려야 하느냐고 말이지. 그러자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자기 죽음을 미리 아는 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능력을 빼앗아 갔다는 것이지. 그 후로 농부들은 마지막 날까지 밭을 경작한다는 거야. 마치 영원히 살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야. 이것이 옳아. 인간은 오직 노동을 통해서만 영원에 동참하는 법이니까. 그러니 나도 오늘(자기 일기장을 가리키며) 내 일상의 밭을 갈아야겠군.


 밖에서 성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백작부인이 이미 잠옷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나 비서에게 신경질적인 눈길을 보낸다.


 백작부인 ; 아, 그렇군. 난 지금쯤이면 당신이 혼자 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신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비서 ; (인사를 하며) 막 가려던 참입니다.

 톨스토이 ; 잘 가게, 게오르게비치.

 백작부인 ; (그의 뒤에서 문이 닫히자마자) 언제나 그가 당신 곁에 있군요. 마치 쇠사슬처럼 당신에게 붙어 있어요. 그는 나를 미워하죠. 그는 나를 당신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해요. 나쁘고 심술궂은 사람.

 톨스토이 ; 당신은 그 사람에게 불공평해, 소냐.

 백작부인 ; 내가 불공평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가 우리 사이에 끼여드는 거죠. 그가 내게서 당신을 훔쳐갔어요. 당신의 자식들을 낯선 존재로 만들었어요. 그가 이 집에 들어온 이후로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말았죠. 당신은 온 세상 사람들 것이지만 우리하곤 무관해요. 바로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하고 말이에요.

 톨스토이 ; 정말로 내가 그럴 수 있다면 좋겠소. 하나님도 인간이 오직 자신과 가족만을 위하는 것은 바라지 않으시거든.

 백작부인 ; 나도 알아요. 그런 말도 그가 당신에게 한 것이죠. 아이들에게서 아버지를 훔쳐가는 사람이야. 그는 당신이 우리들과 멀어지도록 만들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 집안에서 그 사람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요. 선동가 같으니. 난 그 사람이 싫어요.

 톨스토이 ; 하지만 소냐, 내 일을 위해선 그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당신도 알잖소?

 백작부인 ; 그런 사람은 백 명이라도 있어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난 그가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걸 못 참겠어. 그 사람이 당신과 나 사이에 끼여드는 게 정말 싫어요.

 톨스토이 ; 소냐, 제발 흥분하지 말아요. 이리 와서 여기 앉아 봐요. 조용히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가 처음 함께 하게 된 그 시간들처럼 말이야. 생각해 봐요. 소냐, 좋은 말과 아름다운 날들이 우리한테 얼마나 남아 있는지 말이야. (백작부인은 불안한 �로 주변을 살펴보고 몸을 떨면서 자리에 앉는다.) 봐요, 소냐, 난 그 사람이 필요해. 꼭 그 사람이어야 해. 그건 내 믿음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오. ㅅ냐, 난 내가 바라는 만큼 그렇게 강하질 못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 멀리에는 수없이 있다고 매일 확인하기는 하지. 그렇지만 이걸 생각해 봐요. 우리 심정이란 이런 거니까 말이오.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다오. 가까이 있고, 숨쉬고, 눈에 보이고, 느낄 수 있고, 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이오. 어쩌면 성인들은 도와주는 사람 없이도 혼자 자기 천막 안에서 활동하고, 증인이 없이도 낙담하지 않겠지. 하지만 봐요. 소냐, 난 성인이 아니야. 난 그저 나약한 늙은이에 불과해요. 그래서 내 믿음을 공유하는 그 누군가를 가까이 둘 필요가 있는 거요. 이제 내 늙고 고독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 버린 내 믿음 말이요. 벌써 49년 동안이나 당신에게 고마워하고 있지만, 그런 당신이 내 종교적인 생각에 동참해주었더라면 내게는 그지없는 행복이었겠지. 하지만 소냐, 당신은 한 번도 그것을 바란 적이 없었소. 내 영혼에는 가장 소중하게 되어 버린 것을 당신은 사랑 없이 바라보았소. 어쩌면 미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백작부인이 약간 움직인다.) 아니, 소냐, 오해하지 말아요. 당신에게 불평하려는 게 아니오. 당신은 당신이 줄 수 있는 것을 나와 세상에 주었소. 어머니의 사랑과 걱정을 말이지 당신이 당신의 영혼으로 느낄 수 없는 신념을 위해서 어떻게 희생을 하겠소. 당신이 나의 가장 내면적인 사상을 공유하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어떻게 당신을 비난하겠소. 한 인간의 정신적인 삶은, 그러니까 그의 최종적인 사상은 언제나 그와 하나님 사이의 비밀로 남아 있는 법이니까. 다만 이 점을 생각해 보구려. 마침내 누군가가 이 집으로 온 거요. 그는 전에 자신의 신념으로 인해 시베리아에서 고통받은 사람이라오. 그리고 나의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가 와서 나의 조수가 되고 친애하는 손님이 되고, 내적인 삶에 있어서 나를 돕고 나를 강하게 해준다오.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이 사람을 그대로 놔두려 하지 않는 거요?

 백작부인 ; 그가 당신을 내게서 멀어지게 하니까요. 그 점을 못 참겠어요. 바로 그 점을 말이에요. 그것은 나를 미치게 하고, 병들게 해요. 난 당신들이 행하는 모든 일이 바로 나를 노리는 것임을 분명히 아니까요. 오늘 다시, 낮에 말이에요. 나는 그를 보았어요. 그는 황급히 종이쪽지를 감추었죠. 그리고 당신들 중 누구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어. 그 사람도, 당신도, 심지어 사샤까지도 말이에요. 당신들 모두 내게 뭔가를 숨기고 있지요? 나는 알아요. 당신들이 내가 모르는 무슨 나쁜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말이에요.

 톨스토이 ; 죽음을 눈앞에 둔 내가 알면서는 나쁜 일을 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나를 보호해 주시기만을 바란다오.

 백작부인 ; (열정적으로) 그러니까, 당신들이 은밀히 무슨 일을 꾸미는 건 사실이라는 말이군요. 무엇인가 내게 대항하는 일을 말이에요. 아, 당신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나 내 앞에서나 거짓말은 할 줄 모르셨는데.

 톨스토이 ; (벌떡 일어서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그런 말을 하다니. 그런 일 때문에 내가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자제하면서) 이제부턴 내가 알면서 거짓말하는 죄는 범하지 않도록 보호해주십사고 하나님께 빌겠소. 진실을 다 말하는 일이 나같이 약한 인간에게 주어진 행운은 아닐지도 모르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

 백작부인 ; 그렇다면 당신들이 꾸민 일이 뭔지 내게 말해 보세요. 그게 대체 무슨 편지인지, 무슨 서류인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고요.

 톨스토이 ; (그녀에게 다가가면서 아주 부드러운 태도로)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내가 당신을 괴롭히는 게 아니고 당신이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있어요. 당신이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지. 당신이 나를 아직 사랑하고 있다면 나를 믿을 텐데,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에 관해서도 말이오.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제발, 당신 자신을 들여다봐요. 우린 48년을 함께 살아왔지 않소? 그 수많은 세월 중 잊혀진 세월 어느 한 구석에서, 당신에게 생겨난 그 주름살에서 나를 향한 사랑을 약간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불꽃을 잡아서 일으켜봐요. 오래 전의 당신으로 다시 돌아가요. 사랑스럽고 나를 믿는, 부드럽고 헌신적이던 그 모습으로 말이오. 소냐, 당신이 요새 나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 나는 자주 깜짝 놀란다오.

 백작부인 ; (흥분으로 몸을 떤다) 내가 어떤지 난 몰라요. 좋아요. 당신이 옳아요. 난 추하고 심술궂은 사람이 되어 버렸어. 하지만 당신이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들 견딜 수 있겠어요? 하나님과 함께 살려는 이 광란, 이 죄악을 말이에요. 그래요. 그건 죄악이에요. 오만이고, 주제넘는 짓이죠. 절대로 겸손이 아니에요. 하나님께로 올라가려는 생각, 우리에게는 거부되어 있는 진리를 추구하는 그런 태도 말이에요. 옛날에, 아주 옛날에 말이에요. 그 땐 모든 것이 선하고 분명했죠. 우린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정직하고 순수했죠. 자기 일을 하면서 행복했어요. 아이들은 자랐고, 늙어 가는 것을 기뻐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것이 온 거예요. 이 무시무시한 광기. 이 신앙이 30년 전에 당신에게로 와서 당신과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거죠. 난들 어떡하겠어요. 당신이 난로를 청소하고 물을 운반하고 낡은 장화를 수선하고,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당신처럼 온 세상이 위대한 예술가라고 칭송하는 사람이 말이에요. 난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여전히 알 수가 없군요. 부지런하고 절약하고 고요하고 단순한 우리 생활이 어째서 갑자기 다른 사람들에게 죄가 되는지 말이에요. 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알 수가 없단 말이에요.

 톨스토이 ; (아주 부드럽게) 봐요. 소냐. 바로 이 말을 당신에게 하려고 했던 거요. 우리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바로 그 점을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서로 믿어야 하는 거요. 사람들에 관해서나 하나님에 관해서나 마찬가지요. 내가 정말로 무엇이 올바른지 안다고 주제넘게 생각할 거라고 믿소? 아니, 난 그저 그토록 쓰라린 고통을 받으며 정직하게 행하는 일이 하나님이나 사람들 앞에서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할 뿐이오. 그러니 소냐,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도 조금은 믿어 보려고 애써 봐요. 옳은 일을 하려는 내 의지라도 믿어 봐요. 그럼 모든 것이 잘 될 거요.

 백작부인 ; (불안하게) 그럼, 당신들이 오늘 한 일을 모두 내게 말해줄 건가요?

 톨스토이 ; (아주 평온하게) 모든 것을 말하지.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떤 일도 숨기거나 몰래 할 생각은 없어요. 다만 세료슈카와 안드레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그러면 당신들 모두 앞에 나서서 최근에 내가 내린 결정을 솔직하게 말할 참이오. 그 때까지만이라도 소냐, 불신을 버려요. 나를 염탐하지 말아요. 이게 나의 유일한, 진정한 청이오. 소냐 안드레예브나, 이 청을 들어주겠소?

 백작부인 ; 그럼요, 그럼요, 물론이죠. 그러고말고요.

 톨스토이 ; 고마워요. 서로 솔직해지고 믿음을 가지니까 모든 것이 얼마나 쉽소. 우리가 평화롭게 우정으로 이야기하니 얼마나 좋은지, 당신은 내 마음을 다시 따뜻하게 해주었어. 봐요, 당신이 들어섰을 때는 당신 얼굴에 불신이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소. 불안과 증오로 낯선 얼굴이었어요. 그 옛날 당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지. 하지만 지금 당신의 이마는 다시 또렷하고 난 당신의 눈을 들여다볼 수가 있소.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그 옛날 나를 바라보던 당신의 소녀 같은 눈길 말이오. 하지만 이제 가서 쉬어요, 여보, 밤이 이미 늦었소. 진심으로 고마워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자 백작부인은 나간다. 문간에서 다시 한 번 흥분해서 뒤를 돌아본다.)

 백작부인 ; 당신 정말 내게 모든 것을 말해줄 거죠? 모든 것을 말이에요.

 톨스토이 ; (여전히 극히 평온하게) 모든 것을 말하지. 소냐, 당신도 약속을 지켜요.


 백작부인은 불안한 눈길을 책상에 던지고 천천히 나간다.


 톨스토이 ; (방 안을 왔다갔다하다가 책상에 앉아서 일기를 쓴다. 한참 뒤 다시 일어나 방 안을 거닌다. 책상으로 돌아와서는 생각에 잠겨 일기장을 뒤적이다가 낮은 소리로 거기 씌어진 것을 읽는다.) “소피아 단드레예브나를 향해 가능한 한 조용하고 확고한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내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선량함과 사랑으로 그녀를 이끌어 양보하도록 만들 가능성을 보았다. 아, 그렇지만.......”(일기장을 내려놓고는 한숨을 쉰다. 마침내 옆방으로 들어가 불을 켠다. 다시 돌아와 피곤에 전 얼굴로 무거운 농부의 신발을 벗고 윗도리를 벗는다. 그런 다음 불을 끄고 널찍한 바지와 셔츠만 걸친 채 옆방인 침실로 들어간다.)


 한동안 집안은 완전히 조용하고 어둡다. 아무 일도 없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나지막하게, 도둑 같은 조심성으로 서재의 문이 열린다. 누군가가 맨발로 캄캄한 방 안으로 들어선다. 손에는 희미한 등불을 들고 있다. 가느다란 불빛이 처음에는 바닥만 비춘다. 백작부인이다. 그녀는 두려운 듯 사방을 살핀다. 우선 침실 문 쪽을 살핀 다음 아주 침착하게 책상으로 다가간다. 이제 어둠 속에 책상 주위만 원을 이루며 밝다. 불빛 속에서 백작부인의 떨리는 두 손만 보인다. 우선 거기 남겨진 서류들을 집어들어 신경질적이고 불안한 태도로 일기를 읽기 시작한다. 마침내 조심스럽게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본다. 점점 더 급하게 서류더미를 뒤져 보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경련하듯 몸을 떨며 등불을 다시 움켜쥐고 나간다. 그녀의 얼굴은 몽유병자처럼 완전히 혼란스럽다. 그녀의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갑자기 침실 문이 열린다. 톨스토이다. 손에 촛불을 들고 있다. 그것은 몹시 흔들린다. 늙은 남자의 흥분은 그토록 격심하다. 자기 아내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따라가서 벌써 출입문의 손잡이를 움켜쥐기까지 했지만, 갑자기 격렬한 몸짓으로 돌아선다. 그리고는 조용하고 단호하게 촛불을 책상 위에 놓고, 다른 편으로 난 문으로 가 나지막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다.

 톨스토이 ; (낮은 소리로) 두샨, 두샨.

 두샨의 목소리 ; (옆방에서) 선생님이십니까?

 톨스토이 ; 조용, 조용히, 두샨, 빨리 이쪽으로 나오게.

 옆방에서 두샨이 나온다. 그도 잠옷 차림이다.

 톨스토이 ; 내 딸 알렉산드라 류보브나를 깨워서 곧장 이리로 오라고 하게. 그런 다음 서둘러 마구간으로 가서 그리고르더러 마차를 준비하라고 하게. 집 안에 있는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아주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고 전하게. 자네도 조용히 하고. 신발도 신지 말고 문도 삐걱이지 않도록 주의하게. 우린 곧장 출발해야 해. 한 시도 지체할 수 없어.

 두샨 서둘러 나간다. 톨스토이는 결심한 듯 앉아서 다시 장화를 신고 윗도리를 입는다. 서둘러 들어가 몇 장의 서류를 찾아내 한데 모은다. 그의 움직임은 힘차지만 열에 들뜬 듯한 모습을 몇 번이나 보인다. 책상에 앉아 종이쪽지 위에다가 몇 자 적는 동안 그의 어깨가 떨린다.

 사샤 ; (조용히 들어서며)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

 톨스토이 ; 난 떠난다. 출발하는 거야. 마침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한 시간 전에 엄마는 나를 믿겠다고 맹세를 했어. 그런데 지금 새벽 3시에 몰래 내 방으로 들어와서는 서류를 뒤적였다. 하지만 잘된 일이야. 잘된 일이지. 그건 엄마의 의지가 아니라 다른 분의 의지였다.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 기도 드렸는지 모른다. 시간이 되면 내게 신호를 주십사고 말이다. 이제 그 신호가 온 거야. 난 내 영혼을 버린 그녀를 홀로 내버려 둘 권리를 가지게 되었어.

 사샤 ; 하지만 대체 어디로 가실 셈이죠, 아버지?

 톨스토이; 나도 몰라. 알고 싶지도 않다. 어딘가로 가겠지. 다만 이 존재의 비현실성으로부터 벗어나서, 어딘가로, 지상에는 수많은 거리들이 있잖니. 노인이 죽을 수 있는 짚이나 침대도 어딘가에는 있을 테지.

 사샤 ; 저도 같이 가겠어요.

 톨스토이 ; 아니다. 넌 여기 남아서 엄마를 진정시켜야지. 엄마는 미칠 거야. 아, 고통받을 거다. 가엾게도. 그리고 난 엄마를 고통 속으로 내몬 사람이다. 그러나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 더는 어쩔 수가 없다. 여기선 숨이 막힐 지경이다. 넌 여기서 안드레이와 세료슈카가 올 때까지 머물러라. 그런 다음 나를 따라오렴. 난 우선 샤마르디노에 있는 수도원으로 가서 누이와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겠다. 작별할 시간이 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두샨 ; (서둘러 들어온다) 마차가 준비됐습니다.

 톨스토이 ; 그럼 자네도 어서 서둘러 준비를 하게. 두샨, 자 저기 서류를 챙기게.

 사샤 ; 하지만 아버지, 모피 외투는 입으셔야 해요. 밤에는 정말로 추우니까. 서둘러서 좀 따뜻한 옷을 꾸려 볼게요.

 톨스토이 ; 아니다. 아니야. 더는 필요 없다. 하나님! 우린 더 이상 꾸물거려선 안 돼. 난 더는 기다릴 수 없어. 26년간 이 시간을, 이 신호를 기다려 왔다. 서둘러, 두샨, 누군가 우리를 잡고서 방해할지도 몰라. 자, 서류를 챙겨. 일기장도, 연필도.

 사샤 ; 그리고 기차를 탈 돈도요. 가져올게요.

 톨스토이 ; 아니다. 돈은 필요 없다. 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겠다. 역에 가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표를 줄 게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도와주시겠지. 두샨, 준비하고 오게. (사샤에게) 넌 엄마에게 이 편지를 전해주고, 작별 인사다. 엄마가 나를 용서하면 좋으련만, 엄마가 그걸 어떻게 견디는지 내게 써보내라.

 사샤 ; 하지만 아버지, 어떻게 편지를 써보내죠? 엄마가 아시게 되면, 그러니까 우편물에서 아버지의 이름과 계신 곳을 알아내기만 하면 곧장 뒤쫓아가실 텐데요. 가짜 이름을 쓰셔야 해요.

 톨스토이 ; 아, 언제나 거짓말! 언제나, 언제나 다시 이런 거짓으로 영혼을 더럽히다니. 하지만 네 말이 맞다. 이리 오게, 두샨. 좋을 대로 하거라, 사햐. 좋도록 하려는 것일 뿐이니까 말이다. 이름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사샤 ; (한동안 생각한다) 전 모든 전보에다가 프롤로바라고 서명할게요. 아버진 T.니콜라예브라고 하세요.

 톨스토이 ; (몹시 서두르며) T.니콜라예브, 좋다, 좋군. 자, 그럼 잘 있어라. (그녀를 포옹한다) T.니콜라예브라고 했지. 또 거짓이군. 또다시 말이야. 좋다, 하나님, 이것이 사람들 앞에서 하는 마지막 거짓이 되도록 해주십시오.(서둘러 나간다.


제3장

 사흘이 지났다.(1910년 10월 31일). 사스타포보 기차역 대합실. 오른쪽에는 플랫폼으로 나가는 커다란 유리가 끼워진 문이 있다. 왼쪽으로는 역장이 이반 이바노비치 오솔링이 살고 있는 곳으로 통하는 좀 더 작은 문이 있다. 몇 명의 승객이 대합실의 나무의자나 탁자를 둘러싸고 앉아서 단로브에서 오는 급행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두건을 뒤집어쓴 아낙네들이 잠들어 있고, 양가죽을 뒤집어쓴 꼬마 행상들, 그 밖에 신분이 높은 몇 명, 관리와 상인 몇 사람이 있다.

 여행자1 ; (신문을 읽고 있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정말로 잘 했는걸. 노인의 멋진 작품이야. 그런 일은 아무도 생각 못했을 거야.

 여행자2 ; 무슨 일이오, 대체?

 여행자1 ; 그가 집에서 도망쳤대요. 레오 톨스토이 말이에요. 그리고 아무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군요. 새벽에 출발했다는데, 장화와 모피 외투만 걸치고, 짐도 없이, 작별 인사조차 없이 도망쳤다는데요. 의사인 두샨 페트로비치만 데리고 말이죠.

 여행자2 ; 마나님은 집에다 놔두셨군. 소피아 안드레예브나로서는 재미가 없겠는걸. 그 사람 지금 여든세 살은 되었을 텐데. 누가 그런 일을 생각이나 했겠나. 어디로 간다고 했소?

 여행자1 ;집에 있는 사람들이나 기사를 쓴 사람이나 그 점이 알고 싶다는군요. 그들은 사방에다 전보를 치고 있는 모양이오. 불가리아 국경에서 그를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은 시베리아 이야기도 하는 모양이오. 하지만 아무도 확실한 건 모른다는군요. 정말 잘 했군. 노인네가!

 여행자3 ; (젊은 학생) 무슨 말씀들을 하시는 겁니까. 레오 톨스토이가 집을 나갔다뇨? 신문 좀 줘 보십시오. 한 번 읽어 보게요. (잠깐 들여다보고) 오, 정말로 잘 되었군요. 잘 됐어. 그가 마침내 일어섰군요.

 여행자1 ; 어째서 좋다는 거유?

 여행자3 ; 그는 자기가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살아왔잖아요. 수치스러운 일이죠. 벌써 오랫동안 이 세상은 그 사람에게 백작 노릇을 시키고 온갖 아첨으로 목소리를 짓눌러 왔으니까요. 마침내 레오 톨스토이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자기 영혼에서 나오는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군요. 하나님, 여기 러시아 민중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그분을 통해서 온 세상이 알도록 해주십시오. 좋은 일이에요. 이 성스러운 사람이 마침내 자신을 구해냈으니, 러시아에는 축복인 셈이죠.

 여행자2 ; 하지만 여기 씌어 있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요. 어쩌면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몸을 돌리고 속삭인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려고 신문에다가는 이렇게 적어 놓고 실제로는 그를 빼내서 없애 버렸는지도 몰라.

 여행자1 ; 대체 누가 레오 톨스토이를 없애려는 생각을 가진단 말이오?

 여행자2 ; 그들......그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죠. 러시아 정교회, 경찰, 군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 모두죠. 벌써 몇 사람이 그렇게 사라졌는걸요. 외국으로, 나중에 그렇게들 얘기하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외국이라고 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지 않소.

 여행자1 ; (역시 나직한 목소리로)그럴지도 몰라.......

 여행자3 ; 아니, 그 사람들 그렇게는 못 해요. 톨스토이 한 사람이 말만 가지고도 그들 모두보다 강하니까요. 그들이 그렇게는 못 합니다. 그들 모두 알거든요. 우리가 주먹으로 그를 구해내리라는 것을요.

 여행자1 ; (서두르며)조심해, 쉿, 시릴 그레고로비치가 와요. 빨리 신문을 치워요.


 경찰서장 시릴 그레고로비치가 정복 차림으로 플랫폼으로 통하는 유리문 뒤에 나타난다. 그는 곧장 역장실로 통하는 문 앞으로 가서 두드린다.

 이반 이바노비치 오솔링 ; (역장, 자기 방에서 모자를 머리에 쓴 채로) 아, 오셨군요, 서장님.

 경찰서장 ; 말할 게 있소. 방에 누구 있소?

 역장 ; 네, 아내가.

 경찰서장 ; 그럼 차라리 여기서 하지. (여행자들을 향해 날카로운 명령투로) 단로브에서 오는 급행 열차가 곧 들어올 겁니다. 즉시 플랫폼으로 나가주십시오. (모두들 일어나서 서둘러 나간다. 경찰서장이 역장에게) 방금 중요한 전보 몇 통이 도착했소. 도망중인 레오 톨스토이가 그저께 샤마리디노 수도원에 있는 누이에게 들렀다는군. 여거 가지 징후로 봐서 그는 계속 여행할 생각임이 분명하오. 그저게께부터 샤마르디노를 통과하는 모든 열차에 경찰관이 타고 있소.

 역장 ; 하지만 서장님, 궁금한 게 있어요. 어째서 그렇게들 하지요? 그 사람이 선동가는 아니잖아요. 게다가 우리 땅에는 진짜 명예인데, 이 위대한 사람이 여기 오기만 한다면 말이에요.

 경찰서장 ; 하지만 그 사람은 혁명가 도당 전체보다도 더 많은 사회 불안과 위험을 만들어내고 있소. 그 밖에는 내가 알 바가 아니지. 나야 기차란 기차는 모두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니까. 하지만 모스크바에서는 우리가 감시하는 것이 아주 불안한 모양이오. 그래서 부탁인데, 이반 이바노비치. 누구라도 내 옷을 보면 경찰관이라는 것을 금방 알지 않겠소. 그러니 나를 대신해서 플랫폼에 나가주시오. 기차가 도착하면 즉시 비밀경찰이 내려서 당신에게 기 구간에서 자기가 본 것을 말해줄 거요. 그럼 나는 곧장 보고를 해야 하니.

 역자 ;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열차의 진입을 알리는 종소리.

 경찰서장 ; 경찰 요원에게는 오랜 친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해요. 감시한다는 사실을 승객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말이지. 우리가 모든 것을 능숙하게 해 내면 우리 두 사람에게는 이익이 될 수도 있소. 모든 보고는 페테르부르크의 최고위층에게까지 올라가니 말이오, 어쩌면 우리 같은 사람이 게오르크 십자훈장을 타게 될지도 모르지

 열차가 저 뒤쪽에서 소리내며 들어온다. 역장은 유리문을 열고 달려나간다. 몇 분 뒤에 벌써 승객들, 무거운 바구니를 든 농부와 그 아낙네들이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며 유리문을 통해 나온다. 몇 사람은 대합실에 머물며 쉬거나 차를 끓인다.

 역장 ; (갑작스럽게 안으로 들어선다. 앉아 있는 사람들을 향해 흥분해서 소리친다.) 빨리 나가시오, 모두, 빨리!

 사람들 ; (놀라서 투덜대며) 어째서지? 우리도 돈을 냈는데, 어째서 여기 대합실에도 못 앉아 있게 하는 거야? 그냥 열차를 기다리려는 것뿐인데.

 역장 ; (소리친다.)빨리, 모두 빨리 나가시오. (그는 서둘러 사람들을 몰아내고 다시 문으로 가서 활짝 열어젖힌다. (여기로, 자 이쪽으로 백작님을 모셔요.

 톨스토이가 오른쪽으로는 두샨, 왼쪽으로는 딸 사샤의 부촉을 받으며 피곤한 모습으로 들어선다. 외투의 깃을 높이 올리고 목에는 목도리를 둘렀지만, 전신을 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뒤쪽으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따라 들어온다.

 역장 ;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거기 밖에 있어요.

 목소리들 ; 우리도 들여보내 줘요. 우린 그저 레오 니콜라예비치를 도와드리고 싶을 뿐이에요. 어쩌면 꼬냑이나 차라도.

 역장 ; (무섭게 흥분해서) 아무도 이 안으로 들어와선 안 돼요. (그들을 억지로 밀쳐내고는 플랫폼으로 통하는 유리문을 잠근다. 그래도 여전히 유리문 뒤로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들이 지나치면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역장은 서둘러 안락의자를 들어 탁자 옆에 갖다놓는다.) 백작 전하께선 좀 쉬고 싶으시겠지요?

 톨스토이 ; 전하란 말은 그만, 제발 그만둬요. 다시는, 이젠 끝이요. (그는 흥분해서 사방을 둘러보다가 유리문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본다. ) 저리 가요. 이 사람들 좀 보내. 혼자 있고 싶어, 언제나 사람들, 한 번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소.

 사샤가 유리문으로 달려가서 외투를 들고는 사람들을 쫓아낸다.

 두샨 ; (그 사이 낮은 소리로 역장과 이야기한다.) 이분을 즉시 침대로 옮겨야 합니다. 열차에서 갑작스럽게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40도가 넘어요.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이 근처에 편안한 방이 있는 여관 같은 게 있습니까?

 역장 ; 아니, 전혀 없어요. 아스타포보에 여관이라곤 없습니다.

 두샨 ; 하지만 선생님을 빨리 침대에 누우셔야 하는데, 얼마나 열이 나는지 보이죠?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역장 ; 여기 옆에 있는 제 방을 레오 톨스토이께 내드린다면 저로서는 영광입니다만, 용서하십시오. 아주 형편없어요. 너무 단순하고, 그냥 사무실이라, 양탄자도 없이 맨땅에다가 좁고, 감히 어떻게 레오 톨스토이를 그 안으로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샨 ; 그건 상관 없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침대로 모셔야 해요. (갑작스럽게 추위를 느껴 덜덜 떨면서 탁자에 디대앉는 톨스토이에게) 역장님이 친절하게도 자기 방을 내주시겠답니다. 선생님은 당장 쉬셔야 해요. 내일이면 다시 말짱해지실 겁니다. 그럼 우린 계속 여행할 수 있을 테지요.

 톨스토이 ; 계속 여행한다고? 아니, 아니오. 이제 더는 여행이 힘들 거요. 이번이 내 마지막 여행이었어. 그리고 난 벌써 목적지에 도착했는걸.

 두샨 ; (격려하는 투로) 이 정도 열 때문에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닌걸요. 감기에 걸리셨을 뿐입니다. 내일이면 다시 말짱해지실 거예요.

 톨스토이 ; 나는 지금도 말짱해. 아주, 아주 말짱하다구. 다만 지난 밤엔 끔찍했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집에서 사람들이 나를 쫓아올지도 몰라. 그들이 나를 잡아서 저 지옥으로 다시 데려갈지도 몰라. 그래서 난 일어나서 자네들을 깨운 거야. 너무나 두려웠어. 이 두려움이 여기로 오는 내내 나를 놔주지 않는 거야. 이가 덜덜 떨리는 이 열병......하지만 여기 온 다음부턴, 그런데 지금 난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전에 와 본 적이 없는 곳인걸......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어. 이제 더는 두렵지 않아. 그들은 나를 데려가지 못해

 두샨 ; 물론 못하죠. 못하구말구요. 선생님은 편안하게 침대에 드실 수 있습니다. 아무도 선생님을 찾아내지 못할 테니까요.

 두 사람 톨스토이가 일어나도록 부축한다.

 역장 ; (톨스토이에게 다가오면서) 잠깐 실례합니다만,,,,,,,전 그저 아주 보잘것없는 방을 내드리는 겁니다. 제가 쓰는 방지죠. 침대도 좋지 못하구, 그저 쇠침대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것을 준비하죠. 곧 전보를 쳐서 다음 열차편에 다른 침대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톨스토이 ; 아니, 아니, 그만둬요. 너무 오래, 너무나 오랫동안 난 다른 사람들보다 잘 지냈어. 사정이 나쁘면 나쁠수록 내게는 더 좋소. 농부들은 어떻게 죽지? 그래도 편안한 죽음을 맞지 않나......

 사샤 ; (계속 그를 보살피며) 그만하세요, 아버지. 피곤하실 거예요.

 톨스토이 ; (다시 한 번 멈춘 채로) 난 모르겠다. 난 피곤해. 네 말이 맞다. 사지가 다 늘어지는구나. 몹시 피곤하다. 그런데도 난 무언가를 기다린다. 마치 졸리긴 한데 잠들 수 없을 때 같구나. 뭔가 좋은 일을 앞두고 있어서 그걸 생각하느라고, 잠들어서 그 생각을 잃어 버리고 싶지 않아서......이상하다. 이런 기분이었던 적은 없었는데, 어쩌면 이건 벌써 죽음인지도 몰라. 여러 해 동안이나 난, 자네들도 알다시피 죽음을 두려워했어. 내 침대에 누워 있지 못하고 짐승처럼 소리 치르면서 기어 돌아다닐까봐 두려웠던 것이지. 그런데 지금 저 방 안에 죽음이 있어. 그 죽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난 아무런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으러 가고 있네. (사샤와 두샨이 그를 문까지 부축해 간다.)

 톨스토이 ; (문 앞에 멈추어서 안을 들여다보며) 여긴 좋구나. 정말 좋아. 작고 좁고 낮고 가난하군......꿈에서 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 이런 낯선 침대를, 어딘가 낯선 집에 있는, 누군가 늙고 고단한 사내가 누울 침대를, 잠깐만,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 내가 몇 해 전에 썼던 그 사람, 그 늙은이 이름이 뭐였더라? 한때는 부자였다가 아주 가난해져서 돌아온,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래서 난로 곁의 침대로 기어들어간 늙은이 말이야. 아, 내 머리, 멍청한 머리 같으니. 그 사람 이름이.......그 늙은이 이름이? 한때는 부자였지만 이젠 몸에 셔츠만 걸친, 그리고 그를 모욕하던 여자는 그가 죽을 때 옆에 없었지. 그래, 그래, 이제 알았다. 그 때 내 이야기 속에는 코르네이 바실레브라는 이름이었어. 그리고 그가 죽은 밤에 하나님이 그의 처의 마음을 다시 깨어나게 하셔서 그 여자 마르파는 마지막으로 그를 보러 오지. 하지만 너무 늦고 말았어. 그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눈을 감고 낯선 침대에 누워 있는 거야. 그녀는 그가 아직도 자기에게 화를 내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자신을 용서했는지 알지 못했지. 그 여자는 알지 못해. 소피아 안드레예브나는 말이야. (잠에서 깨어나듯이)아니야, 그 여자 이름은 마르파야. 벌써 헷갈리는구나. 그래, 자리에 누워야겠어. (사샤와 역장이 그를 부축해 간다. 톨스토이가 역장에게)고맙소, 낯선 양반. 당신 집에 내 잠자리를 마련해주니 말이오. 하나님은 나 코르네이 바실례브를 숲의 짐승에게로 인도하셨고, 그는 내게 자기 가진 것을 내주었소. 당신이 바로 그렇게 한 거야. (갑자기 놀라서)하지만 문을 닫아요.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아. 난 이제 사람은 싫어. 오직 그분과 단둘이 있고 싶어. 살아 있던 그 언제보다도 더 깊이, 더 가까이 말이야. (사야와 두샨은 그를 침실로 데려간다. 역장은 그들 뒤에서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당황해서 서 있다.)

 바깥 쪽에서 급히 유리문 두드리는 소리. 역장이 문을 열자 경찰서장이 서둘러 들어온다.

 경찰서장 ; 그가 무슨 말을 했소? 곧장 모든 것을 보고해야 해. 지금 당장, 그가 여기 있겠대요? 얼마나 오래?

 역장 ; 그 사람도 다른 누구도 그건 몰라요.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에요.

 경찰서장 ; 어떻게 당신이 그에게 국가 건물 안에 자리를 내줄 수가 있소? 그건 당신의 사무실이나 낯선 사람에게 내주어서는 안 되지 않소?

 역장 ; 레오 톨스토이는 내 마음에는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형제라도 내 마음에 그 사람보다 더 가깝지는 않을 겁니다.

 경찰서장 ; 하지만 먼저 문의를 하는 게 당신 의무일 텐데.

 역장 ; 난 내 양심에 물어 보았어요.

 경찰서장 ; 좋아. 그거야 당신 책임이니까. 어쨌든 난 곧장 보고를 해야 되는데, 큰일났군. 이 무슨 책임이 갑자기 떨어진 거지. 최고위층에서 레오 톨스토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라도 안다면......

 역장 ; (매우 침착한 태도로) 내 생각에 정말로 가장 높은 분은 언제나 레오 톨스토이를 좋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경찰서장은 어리둥절해서 그를 바라본다.)

 두산과 사샤, 조심스럽게 문을 밀며 방에서 나온다.

 경찰서장은 재빨리 사라진다.

 역장 : 백작님은 어떤 상태입니까?

 두샨 ; 아주 평온하게 누워계십니다. 이처럼 평화로운 모습을 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사람들이 그분께 주지 않은 것을 마침내 여기서 찾으신 것 같아요. 평화 말입니다. 처음으로 그분은 자기 하나님과 단둘이 계십니다.

 역장 ; 이 단순한 사람을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전 가슴이 떨리는군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그토록 많은 고통을 그분에게 주실 수가 있는 겁니까? 레오 톨스토이가 자기 집에서 도망쳐 나와 여기 내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침대에서 죽어 가도록 말입니다. 어떻게 사람들, 러시아 사람들은 그렇게 성스러운 영혼을 뒤흔들어놓고, 어떻게 또다른 일을 할 수가 있는 걸까요. 그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두샨 ;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주 그 사람을 자기 할 일에서 벗어나게 했어요.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가장 멀리 도망쳐야 했답니다.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을 겁니다. 이 죽음이 그의 삶을 완성하고 신성하게 만들 거예요.

 역장 ; 하지만, 그래도, 저는 이해할 수가 없군요. 이 사람이, 우리 러시아의 보물이 우리들 때문에 이토록 고통받아야 했다니, 그러고도 모두들 아무 근심 없이 자기 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니. 자기 자신의 숨결을 부끄러워해야 할 판입니다.

 두샨 ; 그를 위해 탄식하지 마십시오. 착하고 좋은 분이시군요. 평범하고 천박한 운명이었다면 위대함과는 맞지 않았을 거예요. 그가 우리 인간들 때문에 고통받지 않았더라면 그는 오늘날 인류에게 소중한 바로 그 레오 톨스토이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