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 찾기

메주란 무엇인가 시래기는?

두꺼비네 맹꽁이 2008. 1. 17. 05:32

 

 

메주를 보고 왔다.

시시래기 말리는 것도 보고  왔다.

청국장도 보고, 호박꼬지도 보고 왔다.


아무래도 죽었겠지요? 죽었느니까,  선배님한테도 전화 한 통 없고, 그렇겠지요?

매번 듣는 이러한 질문이, 안 봐도 비디오처럼 훠언히 보이는 듯한 그 처절하게도 낙담한 얼굴이 두려워서 찾아가기로 했다.

 

성구 엄마를,

저녁이 추워지는 늦가을 어느 날 얄따란 티셔츠에 슬리퍼짝 질질 끌며 돈 이만원 당랑 빌려서 집을 나간 뒤로 엽서 한 장 없는 아들을 석달째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사나흘에 한 번씩 전화가 오는 것 같다. 나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전화를 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분은 그러신다.

죽었겠지요?  

저 아래 어디서 힘들게 끌어올리는 거대한 바위처럼 중량감이 너무도 부담스러운 그 목소리, 그 한 마디 통화가 시작되면 맨 처음  듣게 되는 그 말이 나는 아마 두렵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왜?


 

나는 느끼고 있었다. 성구의 엄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이를테면 내 아들이 지금 너와 같이 있거나 최소한 너는 그 행방을 알 것이다, 그렇지? 하는 뭐 그런 혐의 같은 것, 나는 그것을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찾아가기로 했던 거다. 거기서 메주를 보고, 시래기와 청국장 그리고 등등 기타들을 보았다.

 

 메주란,

 이렇게도 흙내음이 철철 흘러서 내게로 스며들 듯한 환경에서 띄워야 한다. 그래야 제 맛을 낸다고 한다. 간장 본래의 맛을, 된장 본연의 맛에 충실한 물건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본연의 맛이란 무엇인가?

.  

 본연의 맛이라는 거,

 요새 거리를 걷다 보면 원조 어쩌고 하는 간판이 무수히도 많은데 바로 그것,

 우리는 그것을 일러 전통이라고 한다.

 

 전통이란 한 국가 아니 한 민족의 핏줄을 따라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이고, 이 흐름이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당연한 것이어서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는 주제라 할 것이다. 아들이 혹은 딸이 부모의 자식이라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렇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써 새삼스레 전통 운운하게 되었나?

 

 인터넷 마켓의 식품 코너를 서핑하다 보면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가 이 전통이다. 그래야 잘 팔리니까 그럴 것이다. 왜 그렇게 해야만 잘 팔리는가? 무엇인가를 굳이 강조한다면 거기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그렇게도 당연한 것을 그렇게도 낯설게 강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에게서 이른바 전통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 사라졌다기보다 공식적으로 단절된 것은 새마을운동 이후다. 새마을운동이라는 것이 시작되면서부터 우리는 마을 행사에서 풍물을 볼 수가 없게 되었고, 북이며 장구며 꽹과리 꼬깔 등은 창고로 처박히게 되었다.

 

겨울이면 하늘 높이 꼬리를 흔들며 날아오르는 연날기리도 더 이상은 볼 수 없게 되었고, 정월 대보름 즈음이면 들판을 아름답게 채색하는 쥐불톨이도 더 이상은 구경할 수 없게 되었으며, 골목마다 광장마다에서 펼쳐치는 자치기며 댕캉이며 그네뛰기 같은 놀이들도 주눅이 든 채 구악으로 몰려 사라져 갔다. 식탁에는 된장국 대신 스프 같은 것들이 오르기 시작했고, 쌀밥은 토스트니 햄버거로 바뀌어 갔으며, 아이들의 놀이는 총싸움이나 인형놀이 같은 것들로 대체되어 갔다.

 

바뀌거나 혹은 사라진 그것들을 부활해야 한다고 나선 이들이 저 팔십년대의 김지하와 황석영으로 대표되는 소위 문화운동이다. 광주에서 시작된 이 문화운동은 가히 폭발적이서, 거의 단숨에 전국의 대부분 대학에서 풍물 동아리가 만들어졌고, 이후 이십여 년 세월을 건너면서 풍물은 이제 하나의 일상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와 더불어 음식문화도 옛 것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으니, 이는 정치가 제아무리 권위적으로 물리적으로 강제한다 해도 그 성과는 얄따란 표면일 뿐 그 깊은 곳까지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함이라 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성구 엄마를 찾아갔다. 거기서 메주를 보았고, 시래기를 보았고, 성구로 하여금 집을 나게 한, 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그 아우녀석도 보았다.

 형을 두들켜패서 내쫓은 이후로 그 아우는 이제 형의 집을 차지하고 있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서 집에 있는 돈을 모조리 쓸어가곤 한다는 아우였다. 그 돈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당연히 모른다. 그런 아우가 형을 시기하고 있었던가보다. 엄마가 형한테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글 쓰라고 집도 사 주면서 왜 나한테는 크게 주는 게 없냐는 뭐 그런 억하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도 툭하면 명색이 형이라는 자를 뒷골목 양아치 대하듯이 했던 모양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사상이 거대한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이 땅에 또다시 경제 우선 어쩌고 하는 단어가 미친개처럼 흩날리고 있다. 미 미친 바람과 흙내음 풍기는 메주의 공존은 가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