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드렇게 응답하실까나
어느 어미가 그랬다.
생각하면 재밌고 신이 난다고.
딸년이 무장대원들에게 잡혔는데
이 드물디드문 사건을
하나님 아범께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그 어미에게 응답을 하실까.
하긴 기대도 될 것이다.
기대가 없다면, 것두 말이 안 된다.
그 어미로 말할 것 같으면 소위 독실이라는 것을 스무 번쯤 반복해서 강조해도 모자랄 정도로
신앙심이 엄청하다.
그리하여 딸년에게도 권했다.
하나님 아버님이 니 에비라고.
사실은 어미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너를 받아서 낳은 것이라고
그리하여 그 딸년,
아버지를 찾아서 갔다.
순교를 각오하고 갔다.
그리하여 무장한 괴한들에게 잡혔으니,
그것도 하나님 나라를 선전하러 갔다가 잡혔으니,
오, 이제 순교가 눈앞에 왔구나.
신난다. 기대가 만땅이다.
아하하하......
빌어먹을.
이놈의 주제는 소득도 없이 시간을 잡아먹는다.
도대체 현대 사회에서 종교에 발목을 거는 인간들을 나는 용납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내 뜻대로 살아가는 나를 너무 귀찮게 한다. 그래서 용납이라는 단어까지 쓰는 거다.
예전에는, 그러니까 암흑의 시대에는 종교가 더러 구원이기도 했다.
인정한다.
특히 여자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오직 약자여야만 했던 시대에,
그런 시대에 여자들이 기댈 만한 곳으 미륵이라든가 하느님 같은 보이지 않는 영원불변의 존재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데 오늘날의 종교는,
무슨 개도 안 물어갈 천국이니 뭐니 고따위 지렁이 껌 씹어대는 소리나 지껄여대는데도
꾸역꾸역 몰려드는 것을 보면,
아아 참 사람의 산다는 것이 지겨워서 그만 자살이나 해버리고 싶어진다.
정말이다.
밤이면 밤마다 나타나는 저 시뻘건 십자가들을 보고 있노라면 섬뜩하고 섬뜩하다 못해 끔찍하고 지겹고 구역질까지 나오려 한다.
십자가.
지하의 예수께서 저놈의 십자가를 보면 아마도 기함을 하실 거다.
왜 아니 그러겠는가.
그 처연한 상징물이,
개만도 못한 먹사 쉐이들의 밥줄을 위한 간판 구실이나 하고 있는 판에 어찌 기함을 안 하겠는가.
그렇다.
십자가는,
이제 폐지할 것을 청원해야 한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하나의 광고다.
갈비집이라든가 안마시술소 같은,
아직 거기까지 구체성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해도,
이미지광고임은 분명하다.
밤이면 밤마다 나타나는 저 시뻘건 십자가로 인해 나의 정신은 몹시 피곤하다.
그리고 나의 조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종교란 절대적인 그 무엇으로 인식하게 되는 오류에 노출되어 있다. 저 개놈의 개독교가 퍼뜨리는 저 위험천만의 십자가.
이제 저것들을 폐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도록,
운동을 벌이고 청원을 하기에 앞서.,
우선은 연구를 해야겠다.
어떤 일에나 쪽수로 해결을 보자고 덤비는 개독의 단체에서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니.
그 쉐이들을 여하히 꼼짝 못하게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혹시,
하나님인지 뭔지가 그 쉐이들을 정말로 보호하사~~~~~~하면,
그러면 어케 되지?
아 뭐, 그러면 아 저게 정말로 있었네, 하고 내가 그만 두 손 두 발 들고 항복해야겠지.
그러나,
없을 껄?
있다고?
그러면 너가 승리하렴.